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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논문 정리]

“장공 김재준 신학의 특징 : 복음적 사회참여신학” - 김영한(2013)

by [수호천사] 2021.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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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숭실대 명예교수)

한국개혁신학38(2013) : 8-50

 

I. 들어가는 말

 

  • 장공 김재준(1901-1987)의 신학을 보수교회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하나 그의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 아니라 신정통주의 신학에 가깝다. (9)

  • 그는 조선신학교 개교에서도 칼빈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하였다. 그는 항상 개혁신앙의 전통 속에 서려고 하였다. (9)

  • 복음적 사회참여신학 (9)

  • 그는 성경의 역사적 과학적, 도덕적 오류는 인정했으나 그리스도의 근거에서 성경의 영감과 절대권위를 인정했다. (9)

 

II. 구원의 체험 : 구도자에서 순례자로

 

1) 구도자의 종교적 인생순례

 

  • 장공은 그의 글 순례자의 길에서 그 자신이 구도자의 길을 걷다가 어떻게 순례자가 되었는가를 감동스럽게 자서전에 기록하고 있다. ‘자연인’ (10)

  • 구도자는 헬라의 철학, 유교의 윤리, 그리고 현대의 과학을 공부하면서 현대문명(과학, 정치 음악 등)의 근원이 기독교 신앙인 것을 알기에 이른다. (10)

  • 그러나 장공은 마음의 작정과 믿음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그는 여전히 누이가 급성폐염으로 세상을 떠나자 절망하여 다시 방랑자가 되었다고 피력한다. (11)

 

2) 결정적 신앙체험 : 성육신하신 하나님 체험

 

  • 서울 승동예배당에서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 참석. (11-12)

  • 장공의 신앙체험은 칼빈처럼 어느 시점에서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라 루터와 웨슬리처럼 분명하게 다가왔으며, 이러한 신앙의 체험은 앞으로 그의 삶과 신학을 바꾸는 결정적인 영적 체험이었다. (12)

 

3) 구원받은 자의 새로운 감격의 삶 : 수도자가 전령자로

 

  • 장공의 삶은 더 이상 구도자가 아니라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가는 전령자가 되었다고 피력한다. “그리하여 구도자는 순례자로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아니 사명을 가지고 외치며 달음질치는 전령자가 되었습니다.” (13)

  • 장공은 19세기 영국 성공회 출신의 성직자로서 복음주의 지도자요 옥스퍼드 운동의 창립자 뉴먼(John H. Newman, 1801-1890)의 시를 인용하면서 그의 자서전을 마치고 있다. “빛 되신 주여 황혼이 짙으오니 날 인도하소사. 밤은 어둡고 갈 길은 머오니 내 발길 지키소서. 먼 데까지 못봐도 좋사옵니다. 한 걸음 앞길만 비취소서.” 장공의 회심 체험은 어거스틴의 회심 체험처럼 역동적이며 감동적이며, 복음적이며, 생동적이다. (13)

 

III.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책으로 믿음

 

1) 계시의 책으로서의 성경

 

  •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서 회심을 체험한 후 장공은 성경을 문학이나 철학이나 사색이나 과학이나 동양종교의 책 이상의 책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14)

  • 장공이 성경 속에서 하나님 계시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함은 자유주의 신학에서 나와 성경 안에 있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바르트의 경험과 비슷하다... 바르트가 성서연구에서 새롭게 발견한 것은 자유주의 신학이 감추어온 하나님의 초월적 세계이다. (14-15)

  • 장공은 이제 이러한 회심의 사건을 경험을 통해서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죄인을 구속하시는 성부, 성육신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성자, 아들의 구속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시는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체험한다. (15)

 

2) 그리스도 중심적 목적론적 견지에서 성경 영감과 무오 주장

 

  • 장공은 정통주의가 주장하는 성경의 축자 영감설과 무오설이 인위적인 주장이라고 보고 성경의 역사적 오류와 과학적 오류 그리고 도덕적 오류를 인정한다. (15)

  • 장공은 성경 무오설을 지지하지는 않으나 그 의도는 성경의 목적을 제대로 살리기 위함이다... 그는 목적영감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목적영감설 아래 그는 성경 무오성을 인정하고 있다. (15)

  • 장공은 인위적으로 성경의 절대무오설을 주장하는 것을 무거운 짐을 지우는 바리새적 행위라고 비난한다. (16)

  • 장공은 성경이 신앙과 행위에 대한 정확무오한 법칙이다는 명제란 온갖 학문에 다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해석한다. (16)

  • 장공은 목적론적 견지에서 성경 무오설을 주장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은 신앙과 행위에 정확 무오한 유일한 법칙이다. 이렇게 성경을 성경의 설 자리에 서게 하고 그 목적론적 면에서 성경 무오설을 수립할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을 향해서나 대담하게 전도할 수 있다.” (16)

 

IV. 전체적 구원 강조

 

  • 장공은 당시 한국의 보수주의 신학이 개인구원만을 강조했을 때 개인구원만이 아니라 사회구원을 외쳤고, 이 둘이 전체적 구원이라고 강조하였다. (17)

  • 장공은 사회구원의 근거를 역사의 주재자인 하나님에서 찾는다. “역사의 주재자는 하느님이시다. 그리고 그때 그때 역사의 주역은 하느님의 뜻과 선한 설계에 순종하여 무대에서 연출하는 주역이다. 주역이 잘못하면 감독이 딴 사람으로 교체시킬 수 있다.” (17)

  • 양반계층 출신인 기독교지도자인 이상재, 윤치호, 박승삼, 신흥우 등이 중앙 Y를 거점으로 민족주의 의식화에 노력한 공헌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분들을 통하여 한국민족주의 형성과 성취에 공헌한 업적은 지대한 바 있다고 믿는다.” (18)

 

V. 신앙 양심의 자유로운 신학 도입

 

1) 열린 비판적 신학 도입 : 신정통신학

 

  • 장공은... 일본 청산학원에서 자유로운 학풍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장공은 청산학원에서 당시 일본에 처음 소개되기 시작한 바르트의 초월론에 관한 졸업논문을 썼다... 장공의 신학은 보수주의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자유주의ㅅ 신학이 아니라 신정통주의 신학이라고 보아야 한다. (18-19)

  • 장공은 류형기의 편집책임 하에 역사비평을 한국에 처음 소개한 주석인 아빙돈 단권 성경주석의 번역출판에 채필근, 송창근, 한경직과 함께 참여하였다. 이는 그가 자유주의 신학자라기보다는 신학의 자유를 위하여 비판학을 한국에 소개한 것이다. (19)

  • 전경연은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나비가 번데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이 오늘의 젊은이들은 신앙과 신학의 자유를 얻기까지 어떠한 대가가 치루워져야 하는 가를 모르고 있다.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 ‘성서는 비판할 수 있다는 말을 자유스럽게 말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력과 시간과 거짓된 평화의 희생이 요청되었는지 다 말할 수 없다. 그가 그러한 고백을 폐쇄적인 한국교회의 정통 분위기 속에서 토론하고 가르쳤을 때, 이단이란 선고를 받고 심문과 논박, 비난과 저주를 받았다.” (19-20)

  • 장공은 조선신학원 교육이념 5개항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신학사상의 이념이기도 하다... 1) “복음 전파와 학적 사상에 있어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 2) “경건하면서도 자유로운 연구를 통해서 자율적으로 가장 복음적인 신앙에 도달”, 3) “학생의 사상을 억압하는 일이 없이 충분한 동정과 이해를 가지고 신학의 제학설을 소개하고 다시 그들이 자율적인 결론으로 칼빈신학의 정당성을 재확인하도록 함. 4) “성경 연구에 현대비판학을 소개하되, 그것은 성경 연구의 예비적 지식으로 이를 채택함이요, 신학수립과는 별개의 것으로 간주함. 5) “신앙과 덕에 활력을 주는 신학 추구, 신학을 위한 분쟁과 증오 모략과 교권 이용 등은 조선교회의 파멸을 일으키는 악덕이므로 삼가할 것. (20-21)

 

2) 심문자들 앞에서 자기가 믿는 진실을 토로하는 용기있는 양심의 지도자 장공

 

  • 장로교 총회는 조선신학교 문제는 장공만 제거된다면 다른 교수들의 문제는 심각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했다... 장공은 신앙의 양심에 진실한 용기있는 지도자였다. 그는 당시 성경의 절대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이 지배적인 보수 신앙의 분위기 안에서 외톨이가 되고 이단으로 정되받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믿는 바를 숨기지 않고 말했으며 그로 인하여 박해와 고통을 받았던 용기의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의 목적 영감설과 그리스도 구원론적 무오설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교계의 극단 보수주의자들은 장공을 처녀탄생 부인, 기적 부인, 재림 불신 등 그에게 없는 죄목을 씌워서 장공을 퇴진하도록 이끌었다. 6.25 전쟁 중 모인 1952437회 총회에서 이들은 장공의 목사직을 박탈하고 조선신학교 졸업생들에게 일체 교역자 자격을 주지 않기로 결의하였다. (21-22)

  • 19534월 대구서문교회에서 목사 김재준은 제36회 총회 결의에 위반하였다. 즉 성경유오설을 주장하였음으로 권징 조례 제642조에 의하여 예수의 이름과 그 직권으로 목사직을 파면하고 그 직분행함을 금하노라고 선포하였다. (22)

  • 장공은 1948년에 쓴 글 편지를 대신하여에서 당시 자신을 탄핵한 정통주의자들에 대한 장공의 심경과 신학적 사상을 명료하게 엿볼 수 있다. (23)

 

3) 극단적 보수주의에 대한 비판

 

  • 장공은 청산학원에서 자유주의 신학이 막다른 골목에 다달은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 프린스턴에서는 극단의 정통주의 신학이 막다른 골목에서 스스로 고민하는 발악상을 경험하게 된다. (24)

  • 프린스턴에서 1학기를 공부한 후 장공은 피츠버그에 있는 웨스턴신학교로 가서 만우와 함께 수학하였다. 장공은 거기서 구약학을 전공하여 신학사 논문(S.T.B.)으로 출애굽 년대에 관한 고찰”, 신학석사(S.T.M.) 논문으로 모세 오경비판과 주전 8세기 예언운동을 썼다. (24)

  • 귀국하려고 했을 때 장공은 한국이 선교사로부터 근본주의냐 자유주의냐 라는 신학노선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기어코 무슨 주의냐고 한다면 살아계신 그리스도주의라고 할까요? 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경륜대로 써주시기를 기도할 뿐이며, 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24)

  • 장공은 민중종교로서의 기독교라는 논문에서 박형룡이 주도하는 한국교회의 보수주의 신학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거기에는 비판이 없다. 비판없이 성립되는 이 있을 수 없다. 먹이는 대로 통째로 삼키라는 것이다. 조작 작업도 없다. 성서문자 무오설이니 여자적 영감(verbal inspiration)설이니 하는 것을 신주처럼 모시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에는 그러하였다. 신학도 이니만큼 그런 학설들을 그런대로 소개하고 비교연구하여 학도들이 스스로 정부를 판단할 기회를 준다면 몰라도 어떤 학설을 교권으로 통제하여 학도들에게 교권으로 단일화한다는 것은 독재교권이어서 시간과 함께 학문적, 진리탐구적으로 낙오자가 된다. 정신적 지도자인 교역자 양성기간으로서는 무서운 범죄행위라 하겠다. 그래서 십년간 신학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제는 우리나라 신학자들이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경하하여 마지않는다.” (25-26)

 

4) 진보적 보수주의 신학

 

  • 장공의 첫 출판물은 놀랍게도 최인화라는 출판 독지가가 교문사라는 출판사를 세우고 장공에게 부탁하여 낸 무디 설교집 지상의 은혜였다는 사실이다. (26)

  • 한국신학대학 학장을 역임한 김정준은 다음과 같이 장공의 신앙과 신학을 평가한다... “항상 역사의 수평선 저 너머 영원에다 눈길과 손길을 잇대어 장차 올 새로운 아침을 기대하고 그것을 기다리도록 70평생을 끊임없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 보수와 진보 어느 하나에도 자기 발을 부치지 않는 진보적 보수주의, 보수적인 진보주의 사상을 글귀마다 펴나가는 폭넓은 진리의 탐구자, 신앙과 윤리, 교회와 사회, 신학과 철학, 전통과 혁신의 테두리를 자유스럽게 넘나드는 자유의 탐구자, 이런 진리와 자유에서도 높고 깊고 폭넓은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27)

 

VI. 기독교의 유일성에 대한 중도적 바른 이해 : 종교다원주의 거부

 

1) 타종교 인정

 

  • 고신도는 한민족의 유래에서 나오는 종교(기독교의 삼위일체신과 비교)... 불교(생명력이 너무 늙은 것)... 유교... 천주교(긍정적)... 천도교(민족종교). (27-28)

 

2) 기독교의 유일성 인정

 

  • 인간은 종교 없이 살 수 없다...” 그는 종교다원주의에 떨어지지 않고 기독교적 복음주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28-29)

  • 한국교회의 연합... 기독교의 공통분모를 그리스도를 구원주로 믿고 삼위일체 하느님의 존재와 구원경험과 선교와 사랑의 행위와 역사에의 심판과 완성으로 보고 있다. (29)

 

3) 민족종교로서의 기독교

 

  • 장공은 기독교를 인류보편종교로 본다... 그러나 장공은 민족의 자유와 통합을 위한 기독교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민족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말하고 있다. (30)

  • 장공은 기독교가 민족종교가 되는 길은 민족 복음화와 더불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피력한다. (31)

 

VII. 민중신학 비판

 

  • 장공의 구원론은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포괄하는 전체적 구원론으로 보았고 칼빈과 바르트의 사상을 균형잡는 신학을 추구하였다. 그래서 그는 개인구원을 등한히 하고 성경에 기초를 두지 않고 사회학적 전거에 기초를 두는 민중신학에 대하여는 비판하였다. (31)

  • 장공은 예수를 유대민족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그리고 역사의 시금석으로 규정하면서도 이 예수를 단지 민중의 지도자로 규정하지 않고 예수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는 민중의 지도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주와 그리스도요, 하나님을 증거하는 메시아다. (32)

  • 이영재. “장공 선생께, 나중에 노동자들을 위한 교회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노동자들을 모아 혁명투쟁을 통해 이 사회를 뒤집어 놓겠다고 하면서. 못사는 사람들이 해방되는 그런 사회를 만들겠다고 의기양양했었다. 분명 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도리어 날 설득하시더라. 교회는 그러면 안된다고, 교회는 모두를 위한 곳이어야 한다고.” (32)

  • (민중이 야훼, 그리스도를 독점할 수는 없다!)

 

VIII. 장공 신학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위하여 주는 공헌

 

1) 신학의 자유와 비판적 양심을 실천적으로 보여준 선구자

 

  • 그는 보수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교회 안에서 성경에 대한 비판을 전혀 허용하지 않고 신학하는 양심의 소리를 허용하지 않는 폐쇄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신학의 자유와 이에 대한 양심의 비판이 설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위하여 박해를 받았던 선구자였다... 그에 의하면 비판학은 진실의 추구이며, 양심과 자유의 시금석이었다. (33)

  • 이영재는 장공의 성서 비판학의 의도를 다음같이 피력한다... “장공 선생께서 성경을 비평하셨던 것은,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엔 오류가 없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함이셨다. 차갑고 냉정한 신앙인이 아닌 더 뜨겁고 간절한 신앙인들을 만들기 원하셨다. 보수적인 목회자들은 간혹 성경의 글을 자신의 뜻에 끼워맞출 때가 있다. 성경의 무오를 역설하며 그 권위를 내세우지만 가만히 보면 성경의 글이 진짜 말하려고 하는 부분을 간과할 때가 많다. 장공 김재준 박사는 그렇게 성경을 이용하는 것을 막으려 하셨고, 그러자면 성경의 글이 가진 진짜 뜻을 알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보다 객관적으로 성경의 뜻을 찾는 성서 비평학을 도입하셨던 것이다.” (33-34)

 

2) 역사의 하나님을 강조

 

  • 장공은 그가 처했던 1960년대에서 1980년대 한국의 민주와 자유와 인권 탄압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 이에 항거 하기 위하여 정의의 하나님을 강조하였다... 구약의 하나님은 바로 자기 백성의 고난의 현장에 내려가서 싸우시고 구원하시는 역사의 하나님이시다. (34)

 

3) 사회를 향해 존재해야하는 교회 사명을 일깨운 선각자

 

  • 장공은 5.16 군사정권 이래 민주와 자유가 억압된 한국사회 속에서 민주와 자유를 강조하는 복음의 사회성을 실천하였다. (34)

  • 장공은 기독교가 단지 교리종교에 머물지 않고 지역사회를 위한 공공성을 확보해야 할 것을 예언자적으로 역설해주고 있다... 그는 한국교회가 가진 정치적인 사회 참여를 금기시하는 비정치화 전통에 대항하여 교회의 사회참여를 실천하였다. 그러나 그의 신학은 민중신학이 아니라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모두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구원론을 실천하는 복음적 사회참여 신학이었다. (35-36)

 

4) 말년에 지나치게 사회참여에 정력을 쏟아 신학적 노작을 내지 못한 아쉬움

 

  • 장공은 학문적 깊이를 천착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그를 놓아두지 않았다. (36)

 

IX. 기독교 복음을 사회 복음으로 축소하는 위험성

 

1) 개인구원과 교회의 성장에 대한 등한시

 

  • 장공은 비록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서 회심의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적 추구에 있어서는 개인구원과 교회성장에 대한 관심보다는 민족과 사회에 대한 사명과 인간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이 가졌다. (37)

  • 1939년에 있었던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하여 극히 냉담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인상” (38)

 

2) 이상적 인간상과 혁명적 인간상으로 역사적 예수의 축소

 

  • 장공에게는 나사렛 예수를 대속의 주님보다는 유대민족의 이상적 인간상, 민족과 세계를 봉사하는 예언적 인물로 격하시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38)

 

3) 명제적 진리로서 살아 움직이는 하나님 말씀을 놓치는 목적 영감

 

  • 장공의 목적 영감설은 정통주의가 말하는 유기적 영감을 기계적 영감으로 간주함으로써 저자의 인격, 교육, 출생, 언어 등의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하는 영감의 인격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인상을 주고 있다. (39-40)

  • 장공이 선택한 신정통주의의 성경오류론은 성경 진리의 구체성을 파괴하는 현대과학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과학에 동참하였다는 점에 있다. 그리하여 만남으로서의 진리를 강조함으로써 성경의 더 충분한 진리내용을 놓치고 있으며, 성경의 전체적 진리를 만남이라는 사건으로 축소시키고 있다. (40)

 

4) 정통주의 혐오증가 서구 선교사 혐오증

 

  • 그는 당시 함경도 지역에서 선교한 진보주의적 성향의 캐나다 선교사들이 영향을 받아 회심 이후에도 역시 서북지역의 보수주의적 선교사들에 대한 반감과 정통주의에 대한 혐오증을 가진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 아닌가 생각한다. (41)

  • ☞ 혐오를 조장한 원인제공은 언급하지 않는가?

  • 당시 보수주의 선교사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는 당시 맥코믹신학교를 나온 한국지망의 우수한 선교사들의 뜨거운 선교열정을 간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41)

  • ☞ 열정은 뜨겁지만 방향이 틀렸을 수도 있다!

  • 맥코믹 신학교 출신들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들로서 구학파 칼빈주의 전통에 확고히 서 있었고, 무디-생키의 학생자원운동의 출신으로서 부흥운동을 일으키는 데 열정을 가진 자들이었다. (42-43)

  • 장공은 한국교회가 역사로부터 유리와 도피된 신학적 원인을 정통주의 신학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44)

  • 교회사가 김양선은 그의 저서 한국 기독교 해방 10년사에서 다음같이 피력하고 있다. “만일 김재준 교수가 계속적으로 보수주의 신학을 강렬하게 비난하지 않았다면 금일과 같은 장로교회 분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44)

 

5) 말년에 사회운동에 치중 : 교회의 영적 각성에 목소리를 내지 못함

 

  • 학자로서보다는 사회운동가로서의 기질 : “웨스턴에서의 3년은 그런 방향 설정 안에서 이른바 학을 한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렇게 소위 학을 한다면서 동시에 학에 대한 반발 또는 학을 경멸하는 이상한 마음씨가 있었기 때문에 종시 학에 몰두할 수가 없었다. 학보다는 인간 자체의 신비한 세계가 나를 유혹했다.” (45)

 

X. 맺음말

 

  • 장공은 칼빈을 신앙과 신학의 준거로 생각했으며, 바르트와 브룬너에게서 신학적 착상을 받았음으로 그는 개혁신학의 전통에 서 있다. (46)

  • 죽산 박형룡의 신학이 교회지향적 개혁신학이라면 장공의 신학은 사회변혁적 개혁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죽산의 개혁신학이 교의학적이며 몰역사적인데 반해서 장공의 개혁신학은 실천적이며 역사참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46)

  • 그가 정통주의를 지나치게 비판하지 않고 품고 역사적 현실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갔더라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분열되지 않고 그 큰 다양성 속에서 발전하고 화음을 이룰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46-47)

  • (☞ 장공이 아니었다면, 이후 한국교회는 정통주의에 질식하고, 짧은 기간에 세계 신학 사조와 발맞추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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