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틸리히 신학 되새김』
제3부 : 새로운 존재
인간 실존의 문제와 그리스도이신 예수
노트 16 : 실존적 존재로서의 인간
실존주의 사상... 19세기 덴마크의 기독교 사상가 키에르케고르와 러시아의 사상가 베르쟈에프, 문호 도스토옙스키뿐만 아니라 니체와 카뮈의 사상에도 나타난다. 철학계에서는 20세기전반의 야스퍼스, 하이데거, 마르셀, 사르트를 대표적인 4대 실존철학자로 꼽는다. (185)
포스트모던이 강화된 지금 실존주의는? (186)
틸리히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의 곤궁, 고독, 내적 분열, 자기소외를 실존적으로 진지하게 성찰하면 언제 어디서든 실존주의 문제로 제기했던 주제들이 대두되며, 그것은 기독교 복음의 전달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186)
20세기 현대인들에게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으시오!’라는 성경적 선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시대적 상황에 대해 틸리히는 진지하게 생각한 것이다. (186)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라는 기독교의 근본 주장이 주로 도덕적, 윤리적 의미로만 해석되어 살인이나 도둑질, 거짓말, 성적 간음 행위 등으로 해석된다면 현대인은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완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186-187)
키에르케고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갈파한 대로 인간은 자기 실존의 비참 상태에 빠져 절망하기 전에는 구원의 문이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현대인이 왜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고 하는가에 대해 해석하고자 했다. (187)
틸리히는 ‘존재한다, 실존한다’는 말을 라틴어 existere에 대한 어원학적 분석을 통해 실존의 근본 문제를 성찰한다. 어원 분석은 무엇에 존재한다는 것, 실재(실존)한다는 것은 ‘~로부터 나와 선다’는 뜻이다. 그 ‘무엇’은 비존재인데, 비존재를 표현하는 헬라어에는 두 개의 단어가 있고 각각의 단어는 서로 다른 뜻을 갖고 있다. 하나는 ‘절대적 비존재’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적 비존재’이다. (187)
존재함, 실재함을 ‘절대적 무’로부터 나와서 선다는 의미로 보면 존재하는 것, 실존하는 것은 선물이고 기적이고 다시 없음에로 되돌아갈 불안한 유한자로 자각된다. ‘상대적 무’로부터 나와서 선다는 의미로 보면 존재하는 것, 실존한다는 것은 가능태와 잠세태를 극복하고 현실태로 자신을 구현하고 실현하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도 그 존재자 안에는 언제나 모호성과 혼돈의 불안정성이 동반된다. (188)
실존주의적 관심은... 주체적 실존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하이데거는 그러한 특이한 인간적 실존을 ‘현존재’라고 불렀고, 사르트르는 존재자 일반이 존재하는 방식인 ‘즉자적 존재’에 대비하여 실존 곧 현존재를 ‘대자적 존재’라고 불렀다...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유한한 존재’임을 미리 깨달으며, 세상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임을 느끼고, 자기 존재의 본질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창조적 결단의 존재임을 안다. (188)
실존주의 사상의 공통점으로 거론되는 명제, 곧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는 인간이 본래 어떤 존재였으며, 현재는 인간 본질적 상태에서 소외된 상태, 타락한 상태라는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질주의를 근본적으로 거절하기 때문이다. 인간 실존은 무 앞에서, 죽음 앞에서, 세계 현실 앞에서, 타자 앞에서 스스로를 선택 결단하는 ‘자유’를 행사해야만 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불안정하며 모호성에 휩싸이기 때문에 책임적 자유라는 무거운 존재론적 짐을 회피하여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시도함으로써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고 비인간화된다. (188-189)
실존주의는 기독교 신앙과 근본적으로 갈라진다. 기독교는 인간의 본래성을 ‘하나님의 형상’이라 말하고, 단순한 무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의지와 행위에 의해 존재를 선물로 받은 피조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본질과 실촌의 차이를 말한다. 본질은 창조와 인간성의 본래 모습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다!”라고 기뻐하신 신선미가 충만한 생명 상태이다. (189)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는 소외된 실존의 원형이며, 동시에 치유하는 능력이라고 고백하고 증언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학은 복음의 변증을 위해 실존주의를 과감히 사용하지만, 실존주의를 넘어서 믿음에 의한 ‘존재에로의 용기’를 갖는다. (189)
틸리히는 기독교 신앙을 비관주의라고 보지 않는다... 비존재의 힘이 존재 자체이신 하나님의 피조물 긍정과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한다.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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