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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한국근대사 산책 1] 제5장 : 개화파의 등장 (2) 칸트는 알아도 최한기는 모르는 한국인

by [수호천사] 2021.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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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한국근대사 산책 1]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제5장 : 개화파의 등장

(2) 칸트는 알아도 최한기는 모르는 한국인

 

고고(孤高)의 사상가 최한기

  • 혜강 최한기(1803-1877)... 영어에 관한 국내 최초의 기록... 지구전요(地球典要)(1857)에 알파벳 26자를 한자로 음역해 소개함... (186)

  • 최한기의 천주교에 대한 입장... 조선 정부가 천주교에 대해 조금만 더 융통성을 보였더라면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187)

  • 강재언... “19세기 전반기의 사상 상황의 최대 병폐는 외압에 의한 위기를 넘기는 데 필요한 인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런 인재를 처형하고 옥사시키고 유배시키며 초야에 묻히도록 한 데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상 역시 초야에 묻힌 물밑이 사상이고 서재 안의 사상이어서 특권층에 의한 세도정치의 정책 결정에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그는 사상적으로 보거나 인맥으로 보아 이전의 실학파나 이후의 개화파와 연결되지 않은 문자 그대로 고고(孤高)의 사상가였다.” (187-188)

 

최한기의 한국 과학의 아버지

  • 최한기의 기측체의(氣測體義)... 성리학의 시대를 마감하고 기학(氣學)이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는 시기가 도래할 것임을 알리고 있다. (188)

  • 금장태... “최한기는 조선 후기 실학파의 마지막 인물이자 근대 개화사상으로 한걸음 나아갔던, 그 시대의 가장 앞선 진보적 지성인이었다... 그의 저술이 100권이나 된다는 데 세상에 알려진 것은 아직 100여권뿐이다... 자신의 시대를 새로운 것으로 낡은 것을 바꾸는변혁의 시대로 규정한 그는 차라리 옛 것을 버릴지언정 지금을 버릴 수는 없다하여 진보정신을 표방하고 과학과 문명이 더욱 발전하고 역사가 발전해나간다는 것을 확신했다.” (188-189)

  • 이광표... “최한기가 빠진 한국 과학사는 있을 수 없다. 그는 개항 이전까지 서양의 자연과학을 가장 많이 그리고 제대로 소개한, 서양 과학의 전도사였기 때문이다...” (189)

  •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190)

 

최한기를 외면하는 식민지성

  • 2003년 김용현... “칸트는 알아도 최한기를 모르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심지어는 캉유웨이(康有爲)나 후쿠자와 유키치의 이름은 대충이나마 알고 있지만 최한기의 이름은 왠지 낯설다... 지독한 식민지성!” (190)

  • 박희병... “최한기의 사상은 주체와 보편에 대한 우리의 21세기적 모색에도 적지 않은 시사와 교훈을 준다고 여겨진다... 주체를 몰각한 보편은 얼빠진 맹목이며 보편에 견인되지 않거나 보편에 열려있지 않은 주체란 결국 자기 자신은 물론이려니와 타자에 대한 억압으로 화할 공산이 크다. 이 양자의 역동적 균형과 긴장을 잃지 않는 지혜로움이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190)

  • 임형택... “흔히 실학과 개화사상의 연결자로 박규수를 드는데 개혁ㆍ개방사상 측면에서 혜강(최한기)은 박규수보다 훨씬 앞서 나아갔다. 또 박규수는 전통의 과거틀을 지키려 했던 반면 혜강은 새로운 사상 수용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혜강의 기학이 우리 근대화ㆍ근대학문에서 제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기학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한국 근대화가 일방적인 서구화로 기울면서 기학이 설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학문을 이을 제자도 없었고...” (191)

  • 제자가 없으면 아무리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이뤄도 묻히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역사도 역사적 사건의 이해관계자들의 활동에 의해 부각되거나 축소되거나 은폐되기 마련이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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