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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3장 : 제롬(Jerome)

by [수호천사] 202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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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하여 끊임없이 벌인 내면의 투쟁으로 유명했다... 그의 성스러움은 겸손하고 온유하고 부드럽다기보다는 거만하고 격정적이고 자조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항상 인간 이상의 차원에 도달하고자 노력했으므로 게으른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나 자기를 비평하는 자들을 참고 보지 못했다. (341-342)

  • 제롬의 비판의 대상 : 존 크리소스톰, 밀란의 암브로스, 가이사랴의 바실, 힙포의 어거스틴... 그는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을 가리켜 다리가 둘 달린 멍청한 당나귀들이라고 혹평했다. (342)

  • 기독교 미술사에서는 그를 종종 해골을 응시하는 심술궂는 금욕고행자로 묘사해왔다. (342)

  • 중병에 걸렸을 때 꿈 속의 최후이 심판 자리에서 키케로주의자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성경 및 기독교 문학 연구에 전념 (342)

  • (Sex) 문제... 수도생활을 실천함으로써 그 짐을 벗어버리려 했다... 자기의 육체를 학대하고 극단적으로 엄격한 생활을 통해 이러한 생각들을 억제하려 했다... 그리스도에 의해 씻김을 받았으므로 목욕을 하지 않았음... 로마의 쾌락의 장소를 잊게 해줄 수 있는 것으로 마음을 채우기 위하여 히브리어를 공부... (342-343)

  • 은자 생활 포기... 안디옥에서 장로로 선출됨. 로마의 감독 다마수스의 개인 비서로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게 됨... 다마수스의 권유로 성경의 새로운 라틴어 번역... (343)

  • 과부 알비나의 저택... 남편을 여읜 그의 딸 마르셀라, 암브로스의 누이 마르셀리나, 그리고 딸 유스토키움, 이지적 여성 파울라 등과 어울렸다... 친밀한 남성 친구들을 갖지 않았고 성에 사로잡혔었던 제롬이 여성 신자들의 모임에서 위안을 찾았음은 주목할 만하다. (343-345)

  • 384년 말 감독 다마수스의 죽음으로 후원자를 잃음. 적들의 비판... 로마를 떠나 성지(Holy Land)로 가기로 결정. 제롬과 파울라는 팔레스틴에 정착해서 수도생활에 전념하기로 함. 그들의 목표는 극단적인 금욕생활이 아니라 학문에 열중하는 규칙적인 생활이었다. 각각 남성, 여성 수도원을 세움... (345-346)

  • 벌게이트(Vulgate)라고 알려진 제롬의 번역본은 결국 전체 라틴어권의 교회의 표준성경이 되었다. 그는 특히 히브리어 시편을 탁월한 라틴어 시로 번역했다. 이 시편들은 그레고리안 성가에서 사용되면서 더 널리 보급되어 사용되어, 벌게이트 성경 대신 더 현대적인 역본들이 사용된 후에도 전례에서 이 시편들이 사용되었다. (346)

  • 당시 70인역이 히브리 원어판 원문만큼이나 영감을 받은 것이라 생각... 제롬이 70인역과 다른 번역본을 발행하자 많은 이들이 그에게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존경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346-347)

  • 힙포의 어거스틴 :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일을 삼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꼭 번역을 해야겠다면 전에 욥기를 번역한 방식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70인역과 다른 부분이 있을 때에는 주를 첨가하십시오. 그 무엇도 70인역의 권위에 필적할 수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는 히브리어를 잘 아는 많은 번역가들이 히브리어 사본에서 찾아내지 못한 것을 누가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47)

  • 어거스틴은 제롬의 번역이 초래한 폐해의 예로 선지자 요나에게 그늘을 제공한 식물의 이름을 번역한 방식을 언급했다. (347-348)

  • 제롬은 어거스틴에게 답신을 보냈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지조자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 년 후 제롬은 펠라기우스파의 교리를 반박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이를 위해 어거스틴의 저술들을 의지해야 했다. 그 후 그는 북아프리아의 이 지혜로은 감독에게 보낸 편지에 어거스틴에 대한 존경을 표현했다. (348)

  • 제롬의 내면은 겉모습과는 매우 달랐으며, 그의 엄격한 외관 안에 예민한 영이 감추어져 있었다. 이 사실을 파울라와 유스토키움만큼 잘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 404년 파울라가 사망했고, 제롬은 고독하고 쓸쓸함을 느꼈다. (349)

  • 410824일 로마가 알라릭이 이끄는 고트족에 의해 함락된 소식은 세상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후 10년간 고독과 고통과 논쟁으로 점철된 기간... 딸처럼 여긴 유스토키움이 숨을 거둔 몇 달 후 영원한 휴식에 들어감. (349-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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