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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굼... 2세기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시리아어 역본이 등장하여 페시타(“단순한”이라는 의미)라고 알려졌는데, 그것은 비슷한 의미를 지닌 벌게이트를 상기시켜 준다.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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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저스틴의 제자 타티안... 사복음서를 편집한 『디아테사론』은 시리아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 사회에서 많은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7세기에도 시리아 교회에서 사용되었다.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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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 시리아 전파... 가장 성공적으로 전파된 것은 에뎃사(현재 터키 동쪽 지방)였다... 압가루스 9세 때에 기독교화, 가장 오래된 기독교 도시국가였다...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 개종했으며 나병환자였던 압가루스 5세가 예수님에게 에뎃사에 와서 자기의 병을 치료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전설... 편지와 함께 다대오를 보냄... 이 전설은 압가루스 9세 시대에 생겨난 듯하다. 왜냐하면 서신에 인용된 예수님의 말씀은 타티안의 『디아테사론』에서 취한 것이기 때문이다.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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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초에 인근의 아디아베네에 기독교 공동체가 있었던 듯하다. 그곳을 통치하던 왕가가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대(41-54)에 유대교로 개종했고 지역 주민 대부분이 그 신앙을 받아들였는데, 이 유대교인들의 다수가 기독교인이 되었다. 2세기 초에 기독교 공동체가 그곳에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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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뎃사 다음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도시국가는 아르메니아였다... 페르시아와로마의 경쟁에서 아르메니아인들은 로마에 우호적이었다. 아르메니아에 기독교를 도입한 사람은 그레고리 루사보리치이다. 그는 친척인 트라드트 3세와 함께 로마제국에 유배되어 지내는 동안 카파도키아의 가이사랴에서 개종했다.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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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기독교 (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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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케돈 공의회가 디오스코루스를 비롯한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그리스도 안에 인성이 없고 신성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이단으로 단죄했을 때 에티오피아 기독교인들은 이집트 기독교인들을 따라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리스도가 하나의 본성만 소유한다고 주장하는 단성론자가 되었고, 오늘날까지 소위 단성론파 교회의 주류로 남아 있다. 에티오피아 교회의 유명한 기념물은 랄리벨라 암굴성당군이다.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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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시대 초기에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한 파르티아 왕조는 종교적 관용정책을 베풀었고, 기독교는 급속히 성장하여 제국 전체에 전파되었다.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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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년 페르시아 지배세력이 된 사산 왕조의 통치자들 대부분은 기독교를 이방 종교로 여겨 박해하기 시작했다... 고고학자들이 발견한 가장 오래된 교회 건물이 두라-유로포스(오늘날의 시리아)에 건축되었는데, 그것은 3세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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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에 로마제국이 기독교화되면서 기독교에 대한 페르시아의 공식적인 반대가 심화되었다. 이는 기독교인들을 로마에 동조하는 자들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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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중반 페르시아의 위대한 기독교인 현자 아프라하트는 『박해에 관한 논증』이라는 글에서 페르시아 교회가 처한 상황을 증언했다.(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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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공의회(431)와 칼케돈 공의회(451) 이후 대부분의 페르시아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의 두 본성과 관련하여 이 두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했고,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여 어느 정도 종교적 관용을 획득했다. 그들은 동방의 반 체제 교회에 합류했다. 그들 중 일부는 “단성론파”라고 불리는 데, 이는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하나의 본성만 있으며, 그리스도의 인성이 신성에 흡수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따랐기 때문에 “네스토리우스파”라고 불렸다. 네스토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과 인성의 구분을 강조했다.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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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에 아라비아에 기독교가 존재했다... 세 개의 상이한 형태의 기독교... 1) 로마제국 지원을 받는 기독교, 2) 페르시아에서 유래된 기독교, 3) 에티오피아에서 유래한 기독교... 이 세 가지가 혼합된 기독교에 고대 기독교적 영지주의 분파인 엘카시아파가 더해졌다. 이것이 7세기에 무함마드가 알게 되어 거부한 혼란스러운 기독교의 모습이었다. (376-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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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가 인도에 교회를 세웠다는 전승... 180년 경 알렉산드리아의 유명한 기독교 교사 판테누스가 “인도”로 갔으며 325년에 니케아 공의회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 “페르시아와 인도를 대표하는 페르시아인 존”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5세기 초에 인도에 기독교가 뿌리를 내렸음을 보여주는 문서들이 있다.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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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에서 기독교가 제국의 국경을 넘어 크게 전파된 곳은 아일랜드였다... 성 패트릭에 의해 전파...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경험... 환상중에 포로생활을 하던 곳에 가라는 소명...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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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우스주의가 콘스탄티노플 북쪽 게르만 족 사회에 전파됨... 아리우스파 선교사들이 고트족 사회에서 선교... 울필라... “작은 늑대”... 모에시아(오늘날의 불가리아)로 이주... 고트 기독교에 대한 그의 큰 공헌은 고트어의 알파벳을 개발하고 성경을 그 언어로 번역한 것이다.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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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티노플의 제국 근위대에서 근무한 고트인들... 기독교로 개종... 고트인들의 개종은 곧 아리우스주의로의 개종... 아리우스주의는 그들에게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로부터 독립된 교회와 체계를 제공했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정복한 지역에 도입할 정체성을 육성해주었다. (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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