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콘스탄티노플의 존은 죽은 지 100년 후 후세인들에게 크리소스톰, 즉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다. 위대한 설교가... (329)
-
존 크리소스톰에게 있어 강단은 전 생애의 언어적 표현이요 악의 세력에 대항한 전장이었으며, 결국 그를 유배와 죽음의 길로 끌고 간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장소였다. (329)
#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330]
-
수도사가 되기 전 안디옥에서 유명한 수사학자 리바니우스에게 사사했다. 어떤 사람이 누가 그의 뒤를 계승하겠냐고 물었을 때, “존이지,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이미 그를 차지했단 말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함. (330)
-
안디옥의 감독 멜레티우스에게서 세례를 받고 수도생활 시작... 6년의 은둔 생활 후에 안디옥으로 돌아옴. (331)
-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직이 공석이 되자 황제는 손을 수도로 불러들여 그 직분을 맡기려 했다. 그러나 안디옥에서의 그의 인기가 너무 높아 황제의 명령은 비밀리에 수행되었다9납치). 398년 감독에 임명됨. 궁정대신 유트로피우스 도움. (331-332)
-
사치와 음모가 난무한 콘스탄티노플... 성직자들의 생활을 개혁하려 했다. 독신이면서 “영적 자매들”을 둔 성직자들, 재산을 축적하는 성직자들... 개혁은 존경과 증오를 유발시켰다. (332-333)
-
평신도들의 개혁을 요구함 : “여러분의 말 입에 물린 금 재갈과 노예의 손목에 둘린 금팔지와 신발에 달린 금수술은 곧 여러분이 고아의 것을 도둑질하고 과부들을 굶주리게 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이 죽은 후 여러분의 거대한 저택을 바라보는 통행인들은 ‘저 저택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눈물들이 뿌려졌는가? 얼마나 많은 고아들이 헐벗었는가? 얼마나 많은 과부들이 약탈당했는가?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임금이 착취되었는가?’라고 말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통해서도 이러한 고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333)
# 광야로 돌아가다 [333]
-
유트로피우스는 특별한 호의와 양보를 기대했으나 존이 볼 때 그는 복음을 들어야 할 신자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유트로피우스는 자기의 죄를 회개한 것이 아니라 성가신 설교자를 안디옥에서 불러온 자기의 행동을 후회했다. (334)
-
유트로피우스와 암브로스의 대결... 유트로피우스를 반대한 사람들을 체포하려고 했으나 교회로 피신한 사람들을 암브로스가 지켜줌... 유트로피우스의 실각... 유트로피우스가 성 소피아 교회로 도망해 들어왔을 때 보호해줌. 교회의 보호를 믿지 못하여 도망쳤다가 예전에 학대했던 자들에게 잡혀 죽음. (334-335)
-
황제의 아내 유독시아는 인기와 영향력이 높아져가는 암브로스를 질투했다... 크리소스톰이 에베소 교회 문제로 콘스탄티노플을 비웠을 때, 유독시아는 알렉산드리아의 테오필루스와 협력하여 그를 제거할 음모를 꾸몄다... 그러나 계속 강단을 지킴... 유독시의 등살에 못 이긴 심약한 황제는 크리소스톰에게 도시를 떠나라고 명령함. 평화를 사랑한 크리소스톰은 유배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함. (335-336)
-
시민들의 반란, 지진 발생(하나님의 분노의 상징으로 해석됨), 유독시아의 애원에 따라 수도로 귀환. (336)
-
오지의 마을 쿠쿠스스로 유배됨... 설교할 수 없어서 대신 글을 쓰게 됨. 서방의 교황 이노센트의 지지를 받게 됨... 서로마제국 호노리우스에게 항소... 호노리우스는 동로마제국의 아르카디우스에게 서신을 보내 종교회의를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 서로마제국의 사절단은 “바벨론 포로 같은 대접”을 받음. (336-338)
-
흑해 연안의 오집 마을로 옮겨지도록 명령을 받음... 새 귀양지로 가던 중 임종... 그의 평생에서 가장 짧으면서 가장 뛰어난 설교, “모든 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아멘” (338)
-
존이 사망하고 31년 후 분열이 종식되었고, 존의 시신은 당당하게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338)
-
암브로스는 당대의 가장 유력한 황제에 대항하여 승리했다. 반면 크리소스톰은 심약한 아르카디우스에 의해 지위를 박탈당하고 유배의 길을 떠나야 했다. 그 때부터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 교회는 제국의 약화에 반비례하여 점차 강성해져 갔다... 옛 로마 제국의 후예인 동방 비잔틴 제국은 세월에 따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대한 통제의 손길을 늦추지 않았다. (338-339)
'[기타 자료실] > [도서 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4장 : 힙포의 어거스틴 (0) | 2021.02.21 |
---|---|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3장 : 제롬(Jerome) (0) | 2021.02.21 |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1장 : 밀란의 암브로스 (0) | 2021.02.21 |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0장 : 카파도키아 교부들 (0) | 2021.02.21 |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19장 :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0) | 2021.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