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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8권] 제5장. 전시파시즘체제 구축과 친일세력의 동향
제1절. 총동원ㆍ총력체제의 구축
- 전시파시즘기 일제는 내선일체를 구현한다는 명분으로 강력한 사상통제를 실시하였다... 국민정신총동원운동, 국민총력운동으로 이어지는 관제 국민운동을 전개... (189)
- 1938년 7월부터 시작된 총동원운동은 일본 내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운동의 출범 단계부터 이미 관 주도의 철저한 조직체계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일본과 차이가 있었다. (189)
- 조선의 정동연맹(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일본의 국내 ‘거국일치, 견인지구, 진충보국’이라는 세 가지 목표 이외에도 내선일체의 철저와 조선인의 급속한 황국신민화 도모에 목적을 두었다... 실천요목 중 ‘궁성요배’와 ‘근로저축’을 반드시 실천해야 할 2원칙으로 설정해 황민화와 물질적인 전시동원을 동시에 관철시키고자 했다. (190)
- 정동연맹은 실질적으로 총독부와 다름없는 조직과 권한을 갖고 있었지만 외형은 민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조직된 단체로 포장되었다... 조직 구성도 표면적으로는 민간 주축이었다... (191)
- 일제가 정동연맹을 민간주도의 단체로 포장했던 것은 총동원운동에 조선인을 대가 없이 최대한 동원하기 위한 명분이었다... 하지만 민간주도라는 명분 조차도 1939년 정동연맹의 조직 변화와 함께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192)
- 1940년 10월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이 국민총력운동으로 전환되고 총동원연맹이 국민총력연맹(총력연맹)으로 개편되면서 총독부와 거의 일체를 이루는 통치기구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192)
- 1941년 5월 현재 조선인 임원... (193-194)
- 일본에서는 대정익찬회라는 명칭을 사용한데 비해 조선에서는 대정익찬회라는 명칭이 n는 정치운동의 인상을 피하기 위해 국민총력연맹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194)
- 총력운동은 식민지적 특성을 지닌 국민운동이었고, 그 핵심은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물적ㆍ인적 수탈을 위한 강력한 전시파시즘체제의 구축과 강화에 있었다. (195)
- 총력운동의 연도별 목표... 1941년 사상의 통일, 국민 총훈련, 생산력의 확충, 운동 능률 증진 민 연맹정신의 앙양... 1942년 필승체제 확립에 대한 계도, 지도자의 연성, 국민개로운동, 부인계발운동, 국어(일본어) 생활의 철저... 1943년 도의(道義) 조선의 확립, 황민의 연성, 결전생활의 확립, 필승 생산력의 확충, 징병 제도 실시의 준비... 1944년 “신민의 총력을 직접 전력 증강의 한 점으로 결집함으로써 대동아전쟁의 완성을 도모한다”는 기본 방침 아래 국민신앙의 확립, 황민연성의 철저, 내선일체의 철저ㆍ황도문화의 작흥, 사봉(仕奉) 증산의 강화, 결전생활의 철저, 징병제도의 완수... (195)
제2절. 전쟁협력단체의 조직과 활동
- 수양동우회의 탄압... 1938년 내선일체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민간단체 통제는 더욱 철저해졌다... 종교단체들은 종교적 특성상 통폐합 대상은 아니었지만 파시즘체제의 강화와 함께 친일단체로 전락하거나 일본 교단으로 흡수되는 양상이었다. (196-197)
- 민간단체에 대한 통제의 방향... 1) 단체의 해산(민족적인 색체를 띤 단체)... 2) 기존 일본인 단체로의 흡수... 3) 조선인 중심에서 조선인ㆍ일본인의 통합단체로 재편하는 것... (197)
1. 애국금차회
- 애국금차회는 중일전쟁 직후인 1937년 8월 조선부인들로 구성된 전쟁후원단체로서 조선총독부 조선중앙정보위원회의 종용에 따라 조직되었으며, 주로 귀족 부인과 지도층 여성 등으로 구성되었다. (197-198)
- 1937년 8월 한상룡... 석진형, 윤태빈... “남자들이 의도(義刀)를 휘두르며 성전에 나서는 비상한 때에 조선여성은 분기하여 애국금차회를 조직하여 내선일체로 협심하여 황군의 행동을 도와 국은(國恩)에 보답”하고자 한다는 설립취지서... 김활란... 김은호...(198)
- 애국금차회 발기인... 회장(김복수)... 간사 명단... (199)
2. 지원병후원회
- 1939년 1월부터 지원병 후원을 위해 각 지역에서 유력자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다... 지역에 따라 ‘육군지원병 후원회’ 등으로 불리기도 했다... 경성부 지원병후원회(회장 : 윤치호)... 부천 지원병후원회(회장 : 김동완)... 문산 지원병후원회(회장 : 이종철)... 연천 지원병후원회(회장 : 홍응관)... 포천 지원병후원회(회장 : 김정배)... 함북 지원병후원회(회장 : 장헌근)... (200-201)
- 경성부 지원병후원회 회장 윤치호... “지원병제도 실시 3년을 경과하여 1940년에는 14만 4천명, 1941년에는 25만명이나 지원했다며, 160만의 적령자 가운데 나머지 청년들도 분발하여 속히 지원”하라고 촉구... (202)
3. 대화숙
- 1940년 12월 사상통제와 전향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을 개편한 단체... 박영희, 권충일... 1941년 1월에 대화숙으로 재조직... ‘보호관찰대상자나 대화숙의 취지에 찬동하고 그 사업에 봉사 협력하고자 하는 자’를 회원으로 하여, ‘황도정신의 진기앙양과 내선일체 심화ㆍ철저’를 기하고 사상사건 관계자를 선도ㆍ보호한다는 취지를 내걸었다... 주요 활동은 ‘황도정신 수련도장의 신설, 일본어 보급, 강습회ㆍ강연회ㆍ좌담회 등의 개최, 기관지 및 출판물 간행, 수산 경영’ 등... (202-203)
- 김응방, 유억겸, 이묘묵, 장덕수, 김한경, 조일명, 한상건, 민병회, 최용달, 윤치호, 이용설, 현제명, 이종만, 이재경, 이재숙... (204)
4. 황도학회
- 1940년 12월 ‘내선일체의 완성’을 목표로 황도사상을 교육ㆍ선전하기 위해 조직... 발기인 대표는 이광수... 발기인과 임원 명단(회장 : 신봉조)... (204-205)
5. 조선임전보국단
- 1941년 9월 조선인의 전쟁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임전대책협력회와 흥아보국단을 통합하여 결성한 전시체제기 최대의 민간 전쟁협력단체... (205-206)
- 1942년 1월... 조선임전보국단 산하 부인대 발족... (207-208)
- 조선임전보국단 임원진... (208-209)
6. 국민동원총진회
- 1944년 9월 이성환을 중심으로 친일유력자들이 결성한 민간 전쟁협력단체... 대동아 전쟁을 찬양하고 징용ㆍ징병ㆍ군사기지화를 위한 노무 동원에 앞장서다 1945년 3월에 해산되었다... (210)
- 해산 당시 경무국장 서광충웅이 “국민동원총진회는 국가가 위급할 때 반도에서 자발적으로 발족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할 정도로 짧은 기간 동안에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210)
7. 대화동맹
- 1945년 2월 고위 관료를 지냈던 엄창섭과 손영목의 주도로 ‘미영격멸, 내선단결, 성전필승’을 위한 국민운동을 목표로 조직... (211)
8. 대의당
-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6월 전쟁협력과 황도주의 확산을 위해 박춘금의 주도로 조직된 전쟁협력단체... 대아시아주의... 1945년 7월 24일 아세아민족분격대회... 이성근의 개회사... 정원간(중국대표)의 ‘아세아민족 대동단결의 필요성’, 정유분(중국대표)의 ‘왕도문화의 위대성과 국부의 예언’, 동춘전(만주국대표)의 ‘신흥 만주제죽과 왕도정치’, 이창인의 ‘아세아 민족의 자유와 책임’, 박춘금의 ‘아세아 민족의 해방’... 대회 도중 대한혁명청년단 소속의 조무기, 강윤국, 유만수가 대회장에 폭탄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 (212-213)
9. 국민동지회
- 1945년 7월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이성근을 비롯한 친일세력들이 조직한 전쟁협력단체이다. 징용자 원호와 총후 전쟁 지원 등을 목적으로 하였다. (213)
제3절. 친일지식인의 선동ㆍ선전활동
1. 일제의 사상통제와 대중선동
-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일제가 가장 역점을 둔 것은 사상통제와 시국선전 활동이었다... 1937년 7월 22일 ‘조선중앙정보위원회’ 설치... (214)
- 일제의 사상통제는 1938년 초 남차랑 총독이 ‘내선일체’를 조선통치의 목표로 강조하면서 더욱 강화... 전쟁의 장기화에 따라 조선 지배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 (215)
- 일제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생산력 수탈과 노동력 수탈, 민족말살정책을 감행하면서 조선사회 전체에 대한 감시체제를 구축하였다. (216)
- 일제가 가장 일반적으로 활용한 선전수단은 시국좌담회... (216-217)
- 1938년 2월... ‘개정조선교육령’... 4월 3일 축하회... (217-218)
- 1942년 5월 징병제 실시를 결정하자 조선총독부와 국민총력조선연맹은 징병제 실시를 축하하는 대대적인 선동활동에 들어갔다. (218)
- 1943년 10월 일본 육군성이 재학생들의 징집연기 폐지를 골자로 한 ‘육군특별지원병 임시채용규칙’ 공포... 조선총독부도 ‘조선의 교육에 관한 전시비상조치방책’을 발표해... 특별지원을 할 수 있게 했다... 특전을 베푸는 양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지원을 독려... (219)
- 국민총력조선연맹... “학도들이여 나가라! 대호령은 학도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황은에 보답할 때는 이때이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속히 전열에 달려가라. 조선 청년의 철화 같은 의기를 세계에 떨쳐라! 일어서라 그리고 나가라!” (219-220)
- 대다수 조선인들은 여전히 전쟁협력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 일제는 조선인 유력자나 친일단체를 내세운 민간차원의 선동ㆍ선전활동을 강화해 조선인 스스로 전쟁협력을 이끌어내고자 하였다. (221)
2. 친일지식인의 선동ㆍ선전활동
1) 선동ㆍ선전활동
- 많은 친일지식인들은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겪으면서 일본의 힘에 압도되어 독립보다는 일제에 편승하는 것이 조선의 장래를 위해서는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광수, 인정식, 서춘... (221)
- 내선일체를 ‘차별로부터의 탈출 논리’로 받아들이고... 민족차별에서 벗어나 진정한 제국의 신민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기까지 하였다... 새로운 희망, 조선을 위한 길... (222)
-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던 친일지식인들... 1) 교육학술... 2) 언론... 3) 종교(갈홍기, 신흥우, 양주삼, 유각경, 윤치호, 전필순, 정인과, 정춘수 - 기독교 / 권상로, 이종욱 - 불교 / 이돈화, 이종린, 최린 - 천도교 / 안인식, 박상준 - 유교)... 4) 문학... 5) 예술... 6) 기타... (222-223)
- 가장 많이 활용된 매체는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222-227)
- 전시파시즘기 친일지식인의 잡지 기고글... (228-232)
2) 선동ㆍ선전내용과 논리
- (1) 전쟁협력... 조선인의 전쟁협력을 선동하는 글들의 핵심내용은 황국신민의 길, 내선일체의 길을 위한 실천적 노력의 일환으로서 전쟁에 협력해야 한다는 것... 조선인이 병역의 의무를 지는 것은 황국신민이 될 수 있는 특권이라며 병역 그 자체를 큰 영광으로 생각... 동양평화와 신동아건설... 타도 대상은 영ㆍ미... 일본과 공동운명체 강조... (235-241)
- (2) 파시즘체제 옹호... ‘신체제운동’... 정인과는 “국가 사회를 떠나고는 건실한 종교의 완성을 기할 수 없으며, 국가와 종교는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며 종교의 존재 자체를 국가에서 찾고 있다... (241-246)
- (3) 내선일체와 황민화... 친일지식인이 지녔던 기본 논리요 이념... 내선일체를 위한 노력과 과정을 강조... (24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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