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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제22권] 제1부. 제2장. 독립군단 편성과 항일투쟁
제1절. 독립군단 편성과정
1. 대한독립단의 결성
- 3ㆍ1운동 이후 만주지역에서는 본격적인 독립군단의 편성이 활성화되었다.... 의병부대의 이동... 유인석은 ‘북천지계’를 세워 만주의 봉화, 집안에서 항일투쟁의 터전을 닦았다. 황해도 의병장 이진룡, 조맹선, 박장호 등도 만주로 이동하여 활동하였다. 이들은 1919년 4월 15일 유화현 삼원포 서구 대화사에서 대한독립단을 결성하고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23-26)
2. 무관학교 설립과 독립군 양성
- 이회영, 이시영, 이동녕, 이상룡, 김동삼... 1911년경 유하현 삼원포에서 독립군 기지 건설에 착수... (26)
- 신흥무관학교... 신흥무관학교 초대 교장은 이동녕, 교감에는 김달, 학감에는 윤기섭, 교관에는 김창환, 이관직, 교사에는 김갑수, 장도순, 이규봉 등이 활동... 졸업생들은 신흥학우단 조직... 이후 무관학교는 제1군영이라고 할 수 있는 합니하 신흥무관학교에 이어 심산 밀림 고원에 제1군영을 만들어 정예군대를 양성하기 위한 특별훈련대를 편성... 백서농장 또는 유장이라고 불리는 독립군 기지... (26-27)
- 신흥학우단은 기관지 『신흥학우보』를 발행... 제2회 편집인이 강일수... 『신흥학우보』는 단원들과 이주민들의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혁명이념을 선전하며, 학술을 연구하여 근대적인 지식을 보급하였다. (28)
- 동림무관학교(일명 대전학교, 나자구군관학교)... 1913년 이동휘, 김립, 장기영, 김하석, 오영선... 1914년 재정궁핍... (28-29)
-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젊은 장교들이 독립군 진영에 적극적으로 가담... 11기인 임재덕, 김희선, 이갑, 23기인 김경천, 26기인 지청천... (29)
3. 철혈광복단 조직과 활동
- 철혈광복단이 주도한 ‘간도15만원사건’... 1910년대 북간도에서 조직된 비밀결사단체인 광복돤과 러시아 연해주에서 조직된 철혈단이 통합되어 1918년경 조직... 광복단은 1911년초 이동휘가 성진에 본부를 둔 장로교 선교회에서 선교 차 파견되어 북간도지역을 순방했을 때, 북간도 항일그룹의 대표자회의를 소집하고 항일투쟁의 비밀 핵심 조직으로서의 역할을 할 광복단을 조직... 쳘혈단은 1914년 연해주 수청에서 전투적 비밀조직으로 결성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철혈광복단으로 통합... (30)
- 철혈광복단은 1919년 2월 ‘조선독립의 사회’를 건립하고 노령지역과 『독립선언서』를 공동발표하는 등 진일보한 것으로 나타남... 2월 18일 박동원의 집에서는 철혈광복단 가입의식... 국가자의 이홍준, 이성근, 박동원, 김영학, 용정의 김정, 개산둔의 배규정, 팔도구의 유예근, 평강지방의 고동환... 김순문, 강룡헌, 구춘선, 이성호, 고평, 최봉렬, 박정훈, 이동식 등이 참여... 1918년 철혈광복단의 박춘성, 한창걸, 정재관, 강백우, 김광건, 김창섭, 황석태 등이 중심이 되어 ‘한인부’를 결성... (31-31)
- ‘간도15만원사건’... 1919년 9월 김하석이 와룡동의 철혈광복단 단원 최봉설에게 빠른 시간 안에 거액의 군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라는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 용정의 영신학교 교원이며, 철광단 단원이었던 윤준희를 비록하여 임국정 등에게 문제에 대해 의논... 용정출장소의 현금을 탈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조선은행 회령지점에서 용정출장소로 현금을 수송해 오는 호송대를 습격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제안... 연해주에서 무기를 구입하는 도중 이들의 활동이 일제에게 탐지되어 1월 31일 블라디보스톡 일본 헌병대가 윤준희, 임국정, 최봉설, 한상호 등의 숙소를 급습, 혼란 중에 탈출한 최봉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체포... (32-34)
- 1918년 1월 일제는 “러시아에 거주하는 황국신민의 권리와 생명을 보호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염원에서 출병”을 단행한다는 명분하에 4월 5일 블라디보스톡에 군대를 상륙시켰ㄷ. 8월에는 약 2만 8천에 달하는 병력으로 연해주지역을 점령하였고 이에 치타 이서지역으로 진격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은 한인들에게 의료시설 제공등의 편의를 제공한다고 선전... 일제의 연해주지역에 대한 침공이 본격화되자 한인 민족지도자들은 소련의 후원하에 항일투쟁을 전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34-35)
- 1920년대에 들어 노령지방에서는 의군부와 혈성단 및 김규면의 신민단, 황병길의 경비단 등이 주로 이만 이남에 집결하여 국내진입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연해주 중부 이북지방에는 박일리야의 니항군이나 이르쿠츠크 공산당 소속의 적군과 함께 러시아 백군이나 일본군과 전투에 참가하였다. (35)
제2절. 서간도지역 독립군단
1. 독립군단의 현황
- 서간도에서 결성되었던 대표적인 독립군단... (36-38)
2. 독립군단의 활동
1) 서로군정서
- 서로군정서는 1919년 4월 부민단과 신흥무관학교 등 서간도지역의 독립운동단체들이 기존의 조직을 확대하여 한족회로 개편함과 동시에 군사조직으로 군정부를 편성하는 과정에서 결성되었다. 총재는 이상룡, 부총재 여준, 참모장 이탁 등이 선임되었다. 이때 상해임시정부는 안공근, 김병헌을 특파원으로 파견하여 ‘군정부’라는 명칭에 오해가 있음으로 명칭을 임시정부 산하의 서로군정서로 변경을 요청하였다... 1919년 11월 서로군정서는 정식으로 설립... (38-39)
- 서로군정서의 군자금... 한족회... 『한족신보』... 1920년 1월 15일 신문사 폐쇄... 『새배달』... 발행인 천세춘... 집필 담당 이시열.. (40-41)
- 서로군정서... 신흥무관학교의 운영과 확대... 신흥무관학교 졸업생을 중심으로 ‘의용대’ 조직...채찬의 제1중대... (41-42)
- 서로군정서의 국내 전투상황... (42)
-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9월 폐교... 이청천의 지휘하에 서로군정서군으로 편성된 300명의 사관생도들은 안도현 삼인방에서 홍범도 연합부대와 함께 밀산으로 이동하였다.... 채찬 부대는 서로군정서의 주력군이 이동한 후에도 서간도 일대에 계속 주둔하면서 친일단체 보민회와 일본거류민회 등에 대한 소탕활동을 전개하였으며 1922년 다른 독립군단체들과 함께 대한총군부로 통합하였다. (42-43)
2) 대한독립단
- 대한독립단은 3ㆍ1운동 이후 보약사, 향약계, 농무계, 포수단 등 주로 의병운동 계열의 독립군단들이 조직한 독립군단... 복벽주의... 도총재 박장호, 부총재 백삼규, 자의부장 박치익, 사한장 김기한, 참모장 윤덕배, 부참모장 박양섭, 총참모 조병준... 핵심세력들의 대부분은 유인석의 문하생이거나 지방의 양반 출신들... (43)
- 현기정이 평양에서 조직한 공성단... (44)
- 총단장 조맹선은 합이빈에 주둔한 백계러시아군 사령관 세미노프와 교섭하여 그 군대 안에 한인청년부를 설치하고 체계적인 독립군 양성에 주력했다... 일제의 탄압과 아울러 백계러시아군이 군사훈련은 실시하지 않고 한인장정들에게 무리한 사역만 강요하는 등 백러시아군의 무성의한 태도로 성과를 거둘 수 없어 결국 한인특설부는 해체되고 말았다... (44-45)
- 대한독립단의 활동... 연호의 사용이라는 이념적인 문제로 분열... 복벽주의세력은 단기 호근 융희... 민주공화정을 주장하던 세력들은 대한민국 연호의 사용을 주장... 기원파와 국민파로 대립... (45-46)
- 민국독립단은 1920년경 대한 청년단연합회와 함께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총영으로 개편되었다. 기원독립단은 1922년에 광한단 등과 연합하여 대한통의부로 발전적인 해체를 하였다가 1923년 2월 의군부로 개편되었다... (46)
3) 대한독립군비단
- 대한독립군비단은 장백현지역에서 조직된 독립군단체였다... 1919년 5월경 조직... 초기의 군비단은 함경도지역의 민족운동세력이 장백현으로 근거지를 옮겨 조직한 독립군단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46-47)
- 국내조직으로는 북청에 군비단 연락원인 주덕기가 파견되어 지단을 조직... 단천에서도 조덕윤, 강명환 등의 노력으로 지단이 조직되었다... 충청도지방에는 군비단원 최용덕이 활동... 1921년 이후 이영식 부대의 활동... (47-48)
- 이영식 부대의 대원 명단... (48-49)
- 1921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릴 태평양회의의 결과 독립이 이룩되지 않으면 각 독립군단을 연합하여 일시에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49)
- 군비단의 국내진공작전에 대한 『동아일보』 기사... (50)
4) 광복군총영
- 3ㆍ1운동을 전후하여 남만지역의 독립군단들이 통합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결성되었다... 대한민국 연호를 비롯한 5개항... 김승학, 안병찬, 이탁 등을 상해로 파견되어 위의 결정사항을 임시정부에 보고... 오동진은 총영장, 조병준은 경리부장직... (51)
- 광복군총영은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강력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21년 6월 30일, 『동아일보』의 보도... (52-53)
- 광복군총영의 국내진공작전 몇가지 사례... 평양... 서울... 천마산에 근거를 둔 천마별영... 1922년 8월경 통의부로 합류... (53-54)
5) 대한청년단연합회
- 3ㆍ1운동 이후 요녕성 안동현에서 조직된 대한민국임시정부 계열의 독립운동단체로 1919년 11월에 조직... 관전현과 평안도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주도... 대한독립청년단(1919년 4월 결성)을 근간으로 조직을 확대... 안병찬 총재... 이등박문을 총살한 안중근의 변호를 담당... (54)
- 대한독립청년단 단장 함석은은 일본 조도전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 장자일, 박춘근, 윤형보, 김기준 등은 평북 선천에 있는 신성중학, 오동진은 대성학교 속성사범과, 종봉길은 의주 양정학교, 정상빈은 기독교계열의 숭실대학을 졸업... (54-55)
- 기관지 『반도청년보』 발행... 주필 함석은... 5호까지 발행... (55)
- 대한독립청년단... 1919년 8월... 안병찬 외 28명의 연서로 ‘중화민국 관상보 학계제군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 한중공수동맹을 주장... 1919년 8월 안병찬이 체포... (55-56)
- 대한독립청녀단의 김승만, 김시점... 1919녀 11월 1일 “청년은 국민의 중심이며, 국가의 기초이므로 청년이 중심이되어 조선의 국권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대한청년단연합회 취지서」 발표... 1919년 12월 25일경 관전현 향로구에서 제1회 총회... 총재 김승만, 부총재 박춘근, 총무 김찬성, 편집부장 함석은... (56)
- 대한청년단연합회에 참여했던 단체는 80여개 정도... 안병찬이 석방되어 연합회로 돌아오자 조직을 정비하고 독립운동에 박차를 가함... 1920년 4월 19일 제2차 정기총회... 1)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 2) 의용단의 조직... 3) 일본인과 반역자의 처단... 4) 기관보 『대한청년보』를 발행하여 선전활동을 강화... 5) 임시정부 교통기관을 후원할 것... (56-57)
- 의용단 조직을 통한 무장활동의 전개... 군자금 모집... 김준위... 이탁, 김시점... (57)
- 임시정부와 밀접한 연관... 오학수, 장덕로, 오동진, 김두만... 임시정부의 연통제와도 깊은 관련... (57)
- 1920년 5월 일본 경찰이 관전현 홍통구에 있는 본부를 습격하여 총재인 안병찬을 위시하여 오능조, 박도명, 김인홍, 양원모 등이 체포... 1920년 민국독립단과 연합하여 광복군사령부로 발전적인 해체를 단행... (58)
- 무송과 임강현... 백산무사단... 단장 이두성, 총무 김보환, 서기 김성진, 내무 이영빈... 항일무장 투쟁을 전개하는 전투부대는 독판부... (58)
제3절. 북간도지역 독립군단
1. 독립군단의 조직 현황
- 북간도지역 항일단체와 독립군단... (59-62)
2. 독립군단의 활동
1) 북로군정서
- 3ㆍ1운동 이전 만주에서 조직한 중광단이 1919년 가을 이후 대한군정서로 발전하면서 성립한 무장단체... 대종교 지도자였던 서일은 1911년 3월 왕청현에서 중광단을 조직... 단군교의 부활을 의미하는 ‘중광’... 현천묵, 벽순, 박찬익, 계화, 김병덕... 3ㆍ1운동이 발발하자 중광단은 무장투쟁을 전개할 목적으로 대종교 신도와 북상의병 및 공교회 등을 규합하여 정의단으로 확대 발전을 꾀함... 1919년 8월에는 신민회와 광복회 계통의 김좌진을 초빙하는 등 무장투쟁을 위한 준비를 강화... (62-63)
- 정의단은 명칭을 군정회로 변경하고 왕청현 춘명향 서대파에 본부를 두었으며, 1919년 10월 군정부로 명칭을 바꿈.. 12월 상해임시정부 국무원령 205호에 의거하여 대한북로군정서로 명칭을 변경... (63)
- 청산리독립전쟁 직전인 1920년 8월 중순 현재 대원 약 1,200명에 소총과 탄약 24만 발, 권총 150정, 수류탄 780발 기관총 7문이 무기를 확보... (63)
- 김좌진... 박영희... 이장녕, 이범석, 김규식, 김흥국, 김상운... (64)
- 1920년 7~8월경의 북로군정서의 중요 간부진... (64-65)
- 명예고문... 김가진... 국내와 상해에서 활동하던 대동단 총재... 최재형... 연해주 한인사회의 지도자... 임창세... 군정서로 통합된 야단 단장... (65)
2) 대한독립군
- 홍범도에 의해 3ㆍ1운동 직후 북간도에서 조직된 독립군단... 1919년 5월 현재 약 200명의 규모... (66)
- 한인들은 대체로 반일ㆍ반백위파의 전선에 동참... 백위군의 강제징집을 거부했던 귀화한인들이 다수 포함됨... (66)
- 홍범도 부대가 대원 및 무기 등 장비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이동휘와 대한국민회의 역할이 중요... 홍범도가 가도로 근거지를 옮겼던 것은 간도가 갖고 있던 지정학적 이점 이외에도 대한국민회의 간도지부와 훈춘지부라는 대중적 기반의 존재가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여겨진다. (67)
- 국내 진공작전... “당당한 독립군으로서 몸을 포연탄주중에 던져 반만년 역사를 영광되게 하며 국토를 회복하여 자손만대에 행복을 줌이 우리독립군의 목적이요 또한 민족을 위한 본의다”라는 내용의 「대한독립군 유고문」 발표... (67)
- 대한독립군은 1919년 겨울 대한국민회 산하로 들어갔다. 봉오동 전투 이후 1920년 9월부터 근거지를 떠나 국민회군, 한민회군, 의군부, 신민단 등의 부대들과 함께 이도구에 도착... 당시 대한독립군 병력 약 500명, 연합부대 병력 1,400명으로 추산... 『매일신보』... 홈범도에 대해 ‘음모단 중에 제일 무서운 두령’이라고 보도... (68)
3) 대한국민회군
- 대한국민회 산하의 독립군단... 1919년 3월 13일 용정에서 개최되었던 ‘조선독립축하회’에서 ‘조선독립기성회’가 결성되면서 발족... 간민교육회와 간민회 출신... 「대한국민회 규칙」... “본 회는 임시정부 법령 범위 내에서 독립 사업을 기도함으로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 (68)
- 본부를 연길현 합마당에 둠... 1920년 5월경에는 17만원의 거금을 모아 독립운동자금으로 활용... (68-69)
- 1920년 1월경 일제의 정보기관이 파악하고 있던 대한국민회의 조직상황... 마진... 구춘선... (69)
- 1920년 8월말경 대한국민회군의 병력을 약 450명... 홍범도, 최진동의 부대와 제휴하는 연합작전 전개... 1920년 5월 대한북로독군부로 편성되어 6월 7일 봉도동전투에 참가하여 승리... (70)
4) 대한군무독군부
- 북간도 왕청현 춘화향 봉오동 등에서 토지를 개간하고 신한촌을 건설하는데 성공한 최진동을 중심으로 조직... 간부들 중에는 공교회원과 의병 출신이 많았다... (70)
- 1920년 5월경 홍범도의 대한독립군과 안무의 대한국민군, 최진동의 군무독군부가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라는 연합군단을 결성... (71)
- 1920년 현재 대한북로독군부의 병력은 대한독립군 계통이 460명... 국무독군부와 국민회군의 계통은 280명... 봉오동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 주력군... (71)
5) 대한정의군정사
- 1919년 3월 한말 의병운동을 전개하던 이규, 강회, 조돋식, 이동주 등이 조직... 구한국 군인이 주력인 대한정의단임시군정부에서 출발... 1919년 10월 대한정의군정사로 개칭... 1919년 10월 현재 800~900명... (72)
- 1919년 12월 현재 중요 간부... (72)
6) 대한의군부
- 의군단 또는 대한의군단도독부 등으로 불렸으며 북간도와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을 중심으로 1919년 4월경에 조직되었다... 의군부 총재는 이범윤이 추대... 허근, 조상갑, 홍림, 최우익 등이 중심인물... 전투부대는 허근을 대장으로 하는 100여 명의 전위대와 최우익을 총무로 하는 산포대로 구성... 의군부의 최정예부대... 1920년 8월 최우익을 비롯하여 이을, 강도천 등 13명의 핵심인물이 의란구 북동에서 일본군의 포위공격으로 참변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는 등 위기를 맞았다. (73-74)
7) 대한신민단
- 3ㆍ1운동 후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톡에서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조직된 독립군단체... 대한신민회 혹은 신민단으로 불림... 단장은 김규면... 500명의 병력... 김준근 단장, 부단장 박스길, 사령장관 양정하, 참모장 김창순, 재무장 이존수, 대대장 최규남... (74)
- 신민단은 헌장에서 “대한국신민단은 민주제에 의하여 독립국을 건설하고 영원히 보존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었는데, 이는 민주공화제에 입각한 독립국가건설을 목표로 하는 단체임을 알 수 있다. (74-75)
- 1920년 6월 4일 박승길이 인솔하는 30명의 대원이 삼둔자전투에 참가... 6월 7일에는 이흥수가 인솔하는 60명의 대원이 봉오동전투에 참가... (75)
- 광복단은 복벽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조직... 이범윤, 김성극, 전성윤, 홍두식, 황운서, 김승국... 어량촌전투에서 홍범도부대와 연합하여 작전을 전개... (75-76)
8) 대한의민단
- 1920년 4ㆍ5월경 연길현 숭례항 묘구에서 천주교인과 의병이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단장은 방우룡이었다... 국민회군과 연합... 일제측 자료에서는 약 300명... (76)
- 1920년 7월 26일 북간도의 독립군단들이 연합부대로 동도독군부가 창설되자 대한독립군과 함께 제2대대로 편성... 청산리독립전쟁에 참가... 독립군의 북정을 따라 자유시로 이동... (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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