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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곤잘레스, 『종교개혁사』 제4장 : 루터의 신학

by [수호천사]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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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21년 보름스회의에 등장하였을 때 루터는 이미 그의 사상을 결정짓는 신학적 결론들에 도달해 있었다. 그 후에는 보름스에서의 그의 입장을 결정지은 요점들을 확장하고 발전시켰을 따름이다. (67)

 

# 하나님의 말씀

  •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학의 출발점인 동시에 최종 권위로 정립시켰다. (67-68)

  •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은, 그 안에서 예수 즉 성육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접근하기 때문이다. 모든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예수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만난 것이 아니다. (69)

  • 루터와 야고보서... “지푸라기 서신”... 일련의 행동 규범만 발견했을 뿐 복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요한계시록도 문젯거리... (69)

  • 예수 그리스도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개념을 통해 루터는 성경의 권위를 교회 위에 둔 그의 신조에 대항할 가톨릭 측의 반대에 응답할 수 있었다. 가톨릭 측에서는 정경에 포함되어야 할 책들을 결정한 것은 교회인 만큼 교회가 성경보다 우선적인 권위를 가짐이 분명하다고 주장... 루터는 교회가 성경을 만든 것도 아니고, 성경이 교회를 만든 것도 아니며, 성경과 교회 모두를 존재하게 한 것은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라고 응답하였다. (69)

 

# 십자가의 신학

  • 루터는 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듯이 사변(思辨)에 의해 하나님을 알 수는 없다고 설명하였다. 하나님을 알기 위해 천국으로 기어오르려 하는 인간들의 노력은 헛된 것이다. 루터는 이러한 노력들을 가리켜 영광의 신학이라 불렀다. (71)

  • 루터는 영광의 신학 대신 십자가의 신학을 제안했다... (72)

 

# 율법과 복음

  • 루터는 하나님이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안에서 율법과 복음 안에 계시되신다고 여겼다. 율법과 복음의 대조적 관계는 하나님의 계시가 심판의 말씀이요 은혜의 말씀임을 보여준다. 이 두 가지는 항상 동행하며, 심판의 말씀을 들음이 없이 은혜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 (72-73)

  • 나는 전에는 율법을 즐거워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율법이 선한 것일뿐 아니라 달콤한 것임을 발견한다. 율법은 나를 살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므로 그 안에서 기쁨까지 발견한 것이다. 이전에는 율법이 나에게 해야 할 일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을 이에 적응시키기 시작한다. 이런 까닭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섬기는 것이다.” (73-74)

  • 칭의는 죄의 부재가 아니라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74)

 

# 교회와 성례

  • 루터는 개인주의자도 합리주의자도 아니었다. (74)

  • 그의 신학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 안에 있는 개인의 신학이 아니라 신자들의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기독교적인 삶의 신학이었는데, 그는 종종 이 공동체를 가리켜 어머니 교회라고 불렀다. (75)

  • 루터가 그 시대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각 사람의 소명이 태어나면서 결정된다고 여겼지만, 그는 공동생활의 존엄성을 강조함으로써 현대적인 직업의식의 길을 열었다. 그 다음 세대에 칼빈 및 그 시대 사람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직업을 취할 기회를 제공하는 소명의식이 중시되었다. (76)

  • 루터는 세례와 성만찬만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76)

  •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신자들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는 상징 이상의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능력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기 때문이다... 세례는 단지 신자의 생활의 출발점이 아니며, 신자들의 생활 전체가 발생하는 배경이요 토대이다. (76-77)

  • 루터는 그때까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성찬교리의 많은 부분을 거부했다. 특히 개인 미사의 거행, 성찬이 갈보리에서의 희생을 반복하는 것이라는 이해, 그리고 미사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공덕이라는 관념, 화체설, 성찬이 끝난 후 떡 속에 그리스도의 몸이 계속 남아 있다는 교리 등을 반대하였다... (77)

  • 루터는 화체설을 거부하였다. 그는 이 이론이 아리스토텔레스적-그러므로 이교도적-형이상학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 화채설의 교리 자체도 행위적 희생으로서 미사 이론과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믿음에 의한 칭의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78)

  • 루터의 공재설... 그리스도의 몸이 떡과 포도주 속에 함께, 아래와 주위에, 그리고 위에 현존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78)

  • 루터의 동료 칼슈타트는 그리스도가 상징적으로만 성찬에 현존하신다고 주장하였다. 울리히 츠빙글리의 이론은 더 세련된 것이었으나 칼슈타트와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 1529년 마르부르크에서 합의 결렬... (78-79)

 

# 두 왕국

  • 루터에 의하면 하나님은 두 개의 왕국을 세우신 후 하나는 율법 아래, 다른 하나는 복음 아래 두셨다... 통치자들은 복음이 아니라 법을 따라야 한다. 복음의 왕국에서 세속의 통치자들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다... 참 신앙은 세속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말씀의 능력을 통해 전달되어야 한다... (79-80)

  • 교회와 세속 질서에 관계된 루터의 이해는 수세기 동안 그의 추종자들이 불의하고 압제적인 정부들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80)

  • 루터는 평화주의자가 아니었다. 법 아래 있고 법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는 상황과 정의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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