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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곤잘레스, 『종교개혁사』 제11장 :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주의

by [수호천사] 2021.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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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관성 없는 왕실 정책

  • 프랑스의 프란시스 1... 자기 영토에 프로테스탄트주의가 들어와 국가가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으면서, 동시에 적수인 카를 5세를 괴롭히기 위해 독일 내에 프로테스탄트주의 전파를 장려... (175-176)

  •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프랑스의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망명의 길을 떠났으며 칼빈도 그들 중 하나였다. (176-177)

  •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 위치한 나바르 왕국에서는 나바르 왕 앙리와 결혼한 프란시스 1세의 누이 앙굴렘의 마가렛이 개혁운동을 지원... (177)

  • 프란시스 1세 사망(1547) 후 아들 앙리 2세는 프로테스탄트 박해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설립됨... 비밀리에 총회를 개최하여 치리서를 채택... (177)

  • 프란시스 2, 샤를 9, 앙리 3... 이들의 모친 캐서린 데 메디치는 자녀들을 통해 국가를 통치하려 한 야심적인 여성... (178)

  • 기즈가()의 지도자들... 완강한 가톨릭으로서 프로테스탄트의 신앙을 제거하려고 함... 앙브와즈 음모... 이 음모에 가담한 대부분의 인사들은 위그노였다... (178)

  • 루이 드 콩데... 10세인 샤를 9세가 왕이 되었을 때 캐서린 데 메디치는 섭정이 되어 콩데를 사면하고 위그노들과 연합하여 로렌가, 즉 기즈가의 세력을 제한하고자 하였다. (179)

  • 1562년 샹 제르맹 칙령... 위그노들은 예배 장소를 소유하거나, 허가를 받지 않고 총회를 소집하거나, 자금을 모집하거나, 군대를 모집하는 등의 사항은 금지되었으나 예배의 자유가 주어졌다... 비무장으로 모이기만 한다면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179)

  • 기즈가는 이 칙령을 거부... 바시에서 위그노들이 예배드리고 있던 마구간을 포위한 후 살육을 감행... 종교전쟁의 효시... 가톨릭은 기즈의 공작 아래, 프로테스탄트들은 가스파니 콜리니 제독의 지도 아래 모여들었다... (180)

 

# 성 바돌로매 축일 학살

  • 1571년 콜리니는 국왕을 배알하였다. 그에게서 좋은 인상을 받은 젊은 왕은 그를 나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180)

  • 새로운 기증의 공작 앙리는 자기 아버지가 콜리니에 의해 암살되었다고 확신하였으므로 복수를 꿈꾸었다. 캐서린 역시 국왕의 신임과 존경을 얻은 프로테스탄트 제독의 커져가는 영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콜리니 제독 제거 음모 진행... (181)

  • 나바르 국왕 앙리 부르봉과 프랑스 국왕의 누이동생 마가렛 발루아의 결혼 축하... 루브르 궁에서 숙소로 돌아가던 콜리니가 저격을 받음... 위그노 지도자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 기즈가의 행동이라는 증거가 드러남... (181)

  • 캐서린은 왕에게 그의 왕위를 박탈하려는 위그노들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으며 주모자는 콜리니라고 모함하였다... 학살이 발생... 성 바돌로매 축일 대학살... (181-182)

  • 교황 그레고리 13세는 유혈극을 비난하면서도 성 바돌로매 축일 밤을 축하하여 테 데움이라는 감사찬송을 부르도록 명령하였고, 매년 영광스러운 학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같은 조처를 취하도록 하였다. (183)

 

# 세 앙리의 전쟁

  • 샤를 9세는 무능하여 국가를 통치할 수 없었으므로 1574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는 혼란을 거듭하였다. (184)

  • 앙리 3...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판단되자 프로테스탄트 반란자들과 평화조약을 맺고, 파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의 예배의 자유를 인정하였다... 기즈공이 이끄는 표면적 가톨릭 신자들의 반발... 가톨릭을 물리치기엔 위그노들이 너무 약하였고,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 신앙 자체를 소멸시킬 만큼 강하지 못하였으므로 전쟁을 통해 국력은 약화되고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다. (184-185)

  • 앙리 3세에게 후계자가 없었으므로, 법적으로 왕위가 나바르 왕 앙리 부르봉에게 귀속... 그는 프로테스탄트임을 선언... 가톨릭 측에서는 기즈의 앙리를 왕위 계승자로 조작... 로렌 지방에서 옛문서가 발견되었는데, 기즈가는 샤를마뉴 대제의 후손이라는 것... (185)

  • 합법적 국왕 앙리 3세는 가장 무능하고 천박했다... 가톨릭 측의 기증의 앙리는 조작되었음이 분명한 문서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영수였던 앙리 부르봉은 왕위 자체가 아니라 그 계승권만 주장했다. (185)

  • 앙리 3세에 의해 기즈의 앙리는 1538년에 살해됨... 가톨릭 반란군에게 쫓긴 앙리 3세는 앙리 부르봉 진영에 몸을 맡겼다... 광신적인 도미니크회 수도사가 앙리 3세를 살해함... (186-187)

  • 앙리 부르봉은 앙리 4세의 칭호를 택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파리에 입성했다. 1598413일 낭트 칙령을 발하여 위그노들에게 파리만을 제외하고 그들의 이전에 교회당을 소유하였던 모든 장소에서 자유로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187-188)

  • 1610(앙리 4) 국왕이 아직 프로테스탄트 이단이므로 그를 살해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확신한 가톨릭 광신자에 의해 암살되었다.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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