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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사전]/[가]

구자옥 [具滋玉, 1891~1950] 감리교 교인, 경기도지사, YMCA, 납북

by [수호천사] 2024.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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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옥 [具滋玉, 1891~1950]

감리교 교인, 경기도지사, YMCA, 납북

 

 

【1891년】

  •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출생년도가 정확하지 않아 1889년생 혹은 1890년생이라고도 한다. 생일도 3월 20일과 3월 30일로 정확하지 않다.]
  •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이성계의 부장이었던 도원수 구성로의 후손으로 조선 세조 때의 공신, 재상 겸 정치가였던 구치관의 19대 손이다.
  • 친형은 구자록과 창문사의 대표 구자혁이 있는데, 이 중 구자혁은 화가 구본웅의 아버지가 된다. 구자혁의 본처 상산 김씨에게서 얻은 아들이 화가 구본웅으로 구본웅은 이상과 가까웠는데, 구자혁의 재취 부인인 변동숙의 이복 여동생 변동림이 화가 이상의 처였다.

 

【1910년】

  • 1910년 이후 YMCA 중앙기독교청년회에 참여하였다.

 

【1909년】

  • 3월 한성관립영어학교를 졸업하였다. 한성관립영어학교 재학중 감리교 신자가 되었으며 감리교 협성신학교에 진학하였다가 중퇴하였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와세다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 이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 신학부에 입학하였으나 역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1917년】

  • 1917년부터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가 되었다.

 

【1919년】

  • 3ㆍ1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혐의없음으로 풀려났다.
  • 중앙학교 학감(學監)을 지냈으며, 그뒤 경성기독교청년회에 감리교 대표로 참여하고 바로 경성기독교청년회 총무로 선출되고,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연합회 사교부 간사 등을 역임하며 기독교청년운동에 힘썼다.

 

【1920년】

  • 2월, 현철(玄哲) 등과 함께 경성에 연예강습소(演藝講習所)를 설립하는데 참여하였다.
  • 6월, 윤치호, 김성수, 한기악(韓基岳), 조만식, 장덕수, 안재홍, 이갑성, 송진우 등과 함께 민립대학기성회의 창립발기에 참가했으며, 민립대학기성회를 조직하고 조선인 민간 자본으로 대학교를 설립하려 노력하였으나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인허가를 내주지 않아 실패하였다.
  • 7월 13일~8월의 미국 흑인 기독교 양악단의 순회공연 사회자가 되었으며, 이후 미국인 혹은 장로교, 감리교 등 기독교 단체 관련 행사에 사회자로 초빙되었다.
  • 9월,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위원이 되었다.

 

【1921년】

  • 1921년부터 2년간 시카고 조지 윌리엄즈대학에서 수학하였다.

 

【1923년】

  • 2월 18일, 귀국하였다.
  • 8월 9일 오후에는 경성 서대문정 민우회관에서 조선청년회연합회, 불교총무원, 중앙기독교청년회, 개벽사 등 18개 사회단체와 학교 배재고보, 보성전문, 양정고보, 보성고보 등의 학생대표자들이 모여서 조직한 수해구제회의 창립에 참가, 송진우, 이종린, 박승빈 등과 함께 수해구제회 집행위원의 한 사람으로 위촉되었다.

 

【1924년】

  • 9월 13일에는 이승훈의 조선기근구제회(饑饉救濟會)에 김병로, 이종린, 이상재, 백관수, 김약수, 김철수, 이영, 이인 등과 함께 참여하고, 이상재, 이종린 등과 함께 경리부원에 선출되었다.

 

【1925년】

  • 3월 23일 그는 흥업구락부 결성에 참가했다. 흥업구락부는 경성부와 경기도 지방의 기독교계 지도자들인 이상재, 윤치호, 신흥우, 이갑성, 유억겸 등이 이승만 노선에 따라 조직한 것으로 그밖에도 박동완, 안재홍 등도 참여하였다.
  • 12월 15일 귀국한 신흥우가 서웅 중앙YMCA기독교청년회에서 단체 조직을 계획하고 이후 단체 설립에도 참여하였다.

 

【1926년】

  • 1월 수양동우회의 창립에도 참여하였다. 그는 이후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의 감리교측 대표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였으며, 매각될 위기에 처한 이순신 장군 위토 보존 모금운동과 브나로드 운동, 농촌 계몽 활동 등에 참여하였다.

 

【1928년】

  •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에도 적극 가담하여, 1928년 조선기독교계 대표자회의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932년】

  • 기독교연합공의회 초대 간사가 되었다.

 

【1935년】

  • 2월 15일 중앙기독교청년회 회원의 투표에 총무 후보자로 피선, 백남훈, 백낙준과의 최종 결선에서 6대 5로 중앙기청 총무에 당선되었다.

 

【1936년】

  • 9월 22일, 제13회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 서기에 피선되었다.

 

【1937년】

  • 6월 수양동우회 관련 검문검속 시, 이광수, 김동원, 주요한 등 198명과 함께 종로경찰서에 의해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 가을 윤치호, 장덕수, 장택상, 유억겸, 신흥우 등과 함께 청구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기소되었다
  • 그는 수양동우회 사건, 청구구락부 사건, 흥업구락부 사건 등 각각의 사건으로 재판에 회부되었다.
  • 9월, 제14회 조선기독교연합공의회 서기에 피선되었다.

 

【1938년】

  • 1월까지 수양동우회에 관련된 3차 재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 5월 22일 흥업구락부 관련 혐의로 안재홍 흥업구락부 간부 회원 60여 명 등 100여 명과 함께 기소되어, 서대문경찰서에 체포 된 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이후 경성고등법원에 추가 기소되었다. 총독부 경무국은 구자옥을 비롯한 52명을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기소하였다.
  • 5월, 조선기독교연합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 8월 1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최종 무죄 처분받았다.
  • 9월, 우선 신흥우, 정춘수, 유억겸 등 몇명과 함께 전향서를 쓰고 풀려났다. 그러나 재판은 계속되었다.
  •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기관지 『청년』의 편집 겸 발행인으로 활약하였다.

 

【1940년】

  • 4월~5월 조선, 만주 기독교청년회 연합회 행사에 열차편으로 경성역에서 출발, 만주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 7월 18일부터 7월 20일에는 일본 기독교청년회 제18차 총회에 참석차 경성에서 열차편으로 출발, 배편으로 동경을 다녀왔다.

 

【1941년】

  • 1941년 증거 불충분으로 경성복심법원에서 최종 무죄 처분받고 가석방되었다.
  • 대화숙 보호관찰 처분을 계기로 전향, 친일활동을 하였다.

 

【1944년】

  • 《매일신보》에 〈필승은 신의 명령〉이라는 제목의 논설을 기고하여 태평양 전쟁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전쟁 지원을 촉구하는 등 친일 활동을 했다. 임전대책협의회와 경성정동연맹 등 친일 단체에도 가담했다.

 

【1945년】

  • 해방뒤 청년회 재건 당시 조선 기독교청년회연합회 총무로 당선되었다.
  • 8월 16일, 안재홍 등으로부터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를 요청받았으나 거절하고 송진우의 국민대회준비위원회에 가입하였다.
  • 8월 16일 백남훈, 김성수, 김도연, 송진우, 윤보선, 허정, 장덕수 등과 함께 정치 세력을 형성한 뒤 우익 세력 연합으로 9월 2일,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고, 미군정 시기에 경기도 도지사를 역임했다.
  • 11월부터는 해방 후 환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영회에 참석하고, 임정 봉대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는 같은 기독교계열 인사인 김규식 등과의 접촉을 담당하였다.

 

【1946년】

  • 2월 17일, 미군정 경기도 고문회의 회원의 경기도지사 선거에 당선, 미군정 치하에서 다시 경기도지사가 되었다.

 

【1947년】

  • 미군정에서 임명한 루트 중령이 경기도지사 직을 물러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경기도지사직을 맡아보게 되었다.

 

【1949년】

  • 1월 13일, 대한민국의 요청에 따라 경기도지사가 되었다.
  • 1월 감리교 목사 양주삼이 조선총독부에 협력한 일로 반민족행위자로 지목되어 반민특위에 소환되자, 그는 개인 자격으로 현동완, 백낙준, 이용설, 백남훈 등과 함께 그해 4월 양주삼의 과오를 용서해달라는 연명 탄원서를 반민특위에 보냈다.

 

【1950년】

  • 3월, 대한야구협회 고문의 한사람으로 위촉되었다.
  • 한국전쟁 당시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던 중 북한으로 납치되어 갔다.
  • 11월 북행길 도중 강계 부근에서 사망했다는 증언이 있다.

 

【기타】

  •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종교 부문 중 개신교계 인물로 포함되었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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