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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에 사도적 기독교 신앙에 문제를 일으킨 자들은 주로 영지주의자들, 몬타누스와 그 추종자들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대변자 켈수스였다. (32)
# 영지주의(Gnostic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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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린투스는 1세기 후반에 기독교 신앙에 문제를 야기하던 초기 영지주의 교사였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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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를 포함한 물질은 본래부터 인간의 선한 영혼 또는 영을 제한하는 구치소이며 악한 방해물... 이에 비해 영은 본질적으로 신성(divine)-육체의 무덤에 사는 일종의 ‘하나님의 생기’-이라고 믿었다... 구원을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 심지어 대다수의 신자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특별한 종류의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노시스’(gnosis) 또는 지식은 진정한 영의 기원, 즉 하나님의 존재로부터 직접 파생된 것으로서 신성한 그 본질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영지주의자들에게 그리스도는 알 수 없고, 인식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보냄을 받은 비물질적인 존재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으로 하여금 물질(육체)이라는 올가미 안에 갇혀 방황하는 존재의 불꽃을 회복시키며 본향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영적인 사자(messenger)이다.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는 실제로 성육신하지 않았으며 단지 인간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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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영지주의자들은 자칭 비의적인 기독교인들로, 즉 자신들이야말로 답답한 교리나 기존 제도권 교회의 교권구조와 함께할 수 없는 순수한 영적인 사람들을 위한 기독교 형태를제공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기독교야말로 기성교회 신앙보다 더 순결하다고 주장한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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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운동... 조지 트리블리안, 엘리자베스 클레어 프로펫... 이들은 뉴에이지 사상과 영지주의적 기독교를 결합하려고 하였다.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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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영지주의...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물질과 육체적 존재를 비하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리고 같은 이유로 사람의 영혼과 영을 신격화하는 곳에는 영지주의의 이단이 도사리고 있으며 이같은 현대판 영지주의는 또다시 사도의 메시지를 잠식하고 기독교 신앙을 오염시키고 있다. (35)
# 몬타누스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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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누스는 프리기아로 알려진 소아시아 지역 이교의 사제였는데 2세기 중엽에 기독교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몬타누스는 감독들(사도들의 후계자들로서)과 사도의 저서들의 권위과 확립되고 제도화되는 것에 반발했다. 그는 당시의 교회들과 그 지도자들이 영적으로 죽었다고 생각하고, 평화로웠던 초대교회 오순절 사건의 기적과 징조들을 회복하는 “새로운 예언”을 주창하였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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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누스는 프리기아의 한 도시인 파푸자에서 자신의 추종자들을 모아 공동체를 세웠다. 프리스카와 막시밀라라고 하는 두 여인이 그와 합세했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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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지도자들이 몬타누스를 가혹하게 다룬 주요 원인은 그와 그의 여자 동료들이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거나 엄격한 금욕주의(독신, 순결, 엄격한 금식)를 선언했다는 것에 있었다기보다는, 그들이 사도의 후계자들을 거절하고 자신들 스스로 특별한 영감과 권위를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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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의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주장에 대한 반작용으로 교회 지도자들은 방언, 예언, 기적의 은사 그리고 영적인 기사와 같은 초자연적인 발언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같은 카리스마적인 현상은 몬타누스와 몬타누스 분파의 정체성과 동일시되었고 불행히도 이러한 성격들은 감독들과 이후 기독교 황제들의 억압으로 인해 모두 사라져 버렸다. (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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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logos)와 레마(rhema)... 그들은 오늘날 자신들이 선포하는 메시지는 예언(레마)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전해지는바, 이와 같은 메시지는 1세기 시대에 진리로 간주되었던 사도들의 문서들(로고스)을 대체하며 심지어 교정까지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카리스마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예언이 이론이나 실제에 있어서 성경과 동등하다거나 오히려 성경보다도 더 높이 평가될 때 그들의 주장에는 현대판 몬타누스주의가 깃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38)
# 켈수스(Cel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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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 철학자 켈수스... 175년 내지 180년경... 『참된 교리 : 기독교인들에 대항한 논설』이라는 책을 썼다. 오리게네스는 『켈수스를 논박함』이라는 책에서 켈수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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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수스... 교육받은 로마 시민... 자칭 철학 강연자로서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였으나 어른이 된 후 그리스 철학 쪽으로 전향하였다... 그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떠돌아다니는 루머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 교리가 모순되고 미신처럼 보인다고 간결하게 지적하였다. 기독교에 대한 그의 비판의 근거는 항간에 나도는 시시한 소문이 아니라 『참된 교리』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그리스 철학에 근거한 자신의 절충주의 관점에 있었다. (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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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 대한 켈수스의 비난은 2세기의 기독교인들에 대한 생활과 신앙에 관하여 풍부한 정보를 제공한다... 켈수스는 그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한 인간이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처럼 믿으며 예배했다는 점을 아주 명백하게 밝혔다.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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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은 유대인과 가장 교양 있는 로마 시민과 마찬가지로 유일신론자들-하나의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다. 켈수스 역시 유일신론자였다. 비록 그의 신관이 플라톤의 ‘선의 형상’(form of the good) 개념에 근거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즉 만물의 창조자와 동등한 하나님-혹은 적어도 하나님의 로고스(말씀, 지혜)-이었다고 주장한다. 켈수스는 이러한 이중적인 주장이 변치 않는(불변의) 하나님 본질의 완전성과 전적으로 모순되며, 결국 신성모독이라고 보았다.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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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켈수스’로는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1872~1970)을 들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관점에서 기독교를 비평했는데, 그의 철학은 가장 세속적인 인본주의라 하겠다... 러셀은 세속적 인본주의의 진리야말로 20세기의 참된 사상이라고 생각하였다. (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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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세기 기독교지도자들이 열광주의자들과 비판가들에 대한 신학적인 대응을 발전시켰을까? 답은 간단하다. 구원을 위해서이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자존심이나 권력이나 어떤 사상적 충격 때문이 아니라 복음의 순수함을 유지하며 전파하고자 신학적으로 응답했던 것이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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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누스... 기독교의 신령한 은사와 징조와 기적이 갑자기 소멸된 것과 같이 너무나 과격한 양상으로 흘렀는지도 모른다.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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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수스... 교회는 교육받은 로마인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을 선전하기 위해 기독교 세계관에 지나치게 많은 그리스 철학 정신을 흡수했는지도 모른다. (41)
# 영지주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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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정통’이라는 것은 사도들의 정식 계승자들과 바로 그 사도들로부터 비의적 전통의 가르침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와의 갈등에서 태어났다.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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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의 기본적인 신앙은 “이 우주는 구제 불능한 것이며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라는 사상이다. 영지주의는 우주가 악의 산물이라는 입장을 취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영적 해결책, 즉 본래부터 악한 물질적 환경(사람의 몸을 포함해서)에서 영혼의 진정한 본향을 회복시키는 구원의 방법을 제시했다.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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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의 유사점... 1) 전적으로 초월한 영적 존재인 하나님, 물질적인 우주는 열등한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2) 인간 존재는 하나님과 동일한 영적 본질의 불꽃 혹은 작은 물방울들이며, 육체 속에 갇혀 있다... 3) 물질세계는 악으로 가득하며 타락과 죄로 이끌린다는 것에 동의하고, 창조와 타락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으로 믿었다... 4) 구원이란 물질적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구원을 자신을 아는 앎으로 말미암는다... 5) 예수는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인간적인 수단, ‘그리스도’로 간주하였다(육체의 부활 거부). (4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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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의 차이점... 선한 영들(신성한 불꽃들)이 떨어져 물질적인 육체의 덫에 잡힌 것에 대한 신화적인 설명에 기인... 영혼의 귀향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 기독론(가현설, 이원론적인 기독론)... (4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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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에 관해서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구원관과 다르다. (44)
# 영지주의에 대한 초대 기독교의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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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us)의 반박문... 『신타그마』(Syntagma) 혹은 『모든 이단에 대한 대요(大要)』... 최초의 반-영지주의 논쟁.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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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이단들, 그리고 비판가들과의 투쟁을 거치면서 2세기의 기독교는 교회 신앙의 형식을 갖추고 교회 조직화를 추진하였다... 교부들이 기독교 신앙, 생활, 그리고 예배의 표준을 너무 엄격하게 요구했다면, 거기에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표준들이 부과되지 않았더라면 기독교는 혼란과 혼동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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