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사』 결론
서굉일, 『일제하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사』 결론 일제의 식민통치가 강화됨에 따라 수많은 이주민으로 형성되었던 북간도의 한인 촌락은 일제의 탄압이 적극적으로 미치지 않았던 1915년 이전까지는 민족독립운동의 근거지로 발달될 수 있었다... 1921년 북간도 이백여 처의 교회는 선교사의 도움과 평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설립되어 자주, 자립, 자치로 발전한 것들이었다... (267) 북간도의 한인들은 간민자치회, 간민교육회, 간민회, 국민회, 삼국전도대, 교회청장년회, 주일학교, 사경회, 기도회, 부흥회, 토론회 등을 통하여 기독교 신앙과 함께 민족정신을 고취하였다. 명동학교를 비롯한 북간도 기독교 학교들의 교육은 시문화운동 뿐 아니라 애국 청년을 길러내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267-268) 간민회.....
2021. 2. 28.
『일제하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사』 제2부 : 제3장 - 사회운동
서굉일, 『일제하 북간도 기독교 민족운동사』 제2부. 북간도 기독교인들의 민족운동의 실태 제3장. 사회운동 간민자치회, 간민교육회, 간민회, 국민회 등 사회단체의 조직... 삼국전도대, 부녀회, 청년회, 기독교우회, 만국개량회와 교회의 여러 형태의 집회 및 행사... 민력양성의 민중운동이었으며 국권회복을 위한 장기적인 전력의 축적... 북간도가 국외 독립운동 기지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민중들이 지도층이었던 기독교도들이 한인들을 애국주의와 신지식으로 계몽시켜 국민적 훈련과 각성을 촉구하였기 때문... (177) 1. 간민교육회의 조직과 국민회 1907년... 일제는 북간도 용정에 통감부 임시 간도파출소를 설치... (177) 북간도 기독교계 민족주의자 김약연, 김영학, 구춘선, 강백규, 유찬희, ..
2021. 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