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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7부] 제24장 : 루터에 의한 복음의 재발견과 교회의 분열 마르틴 루터(1483-1546)... 중산층 아버지... 미신에 사로잡힌 어머니... 훌륭한 교육... (447) 법률 공부를 위해 에어푸르트 대학교 들어감... 1505년... “성 안나여, 나를 도우소서!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원... (447) 루터의 고해신부... 요하네스 스타우피츠...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강조하였다... 에어푸르트 대학교에서 철학, 신학 그리고 성경을 공부하도록 하였다... (448) 하나님의 절대자유는 은혜와 사랑 그리고 긍휼에서 자신을 스스로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배후에 하나님은 “감추어 계신 하나님”으로 표현된다. 유명론은 아마 루터로 하여금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 전통으로부터 돌아서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2021. 2. 28.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7부] 제7부 : 뜻밖의 사건에 대한 이야기 : 서방교회의 개혁운동과 분열 마르틴 루터는 서방측 기독교 신학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다. (442) # 종교개혁의 배경들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의 신학교수 마르틴 루터... 95개 조항(반박문)... 서방측 기독교계가 유일하게 공식적인 교회로 인정했던 로마 가톨릭교회가 심각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였다. (442) “주님의 포도원에 들어온 멧돼지” (442) 개신교의 3대 원리... “오직 믿음을 통한 은총에 의한 구원”, “오직 성경”, “만인사제직” (443) 인간의 모든 전통들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이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진정한 기독교인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느 특별한 중재자가 필요 없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의 사제이다. (443..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6부] 제23장 : 스콜라 철학자들에 대한 유명론자, 개혁주의자 그리고 인문주의자의 도전 유럽의 문화는 14, 15세기를 지나는 동안 시종일관 혼란의 상태였다. 민족주의, 흑사병, 교회의 타락... 아비뇽의 유수... (416) #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전의 세 사람의 개혁자들 르네상스는 유럽의 문화적 엘리트층 사이에 있었던 하나의 분위기였다... ‘인본주의’... 그러나 세속적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1천 년 동안 최고의 권위로 군림했던 인간성에 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비관주의를 거부하며 인간의 문화적 독창성을 순수하게 믿는 것이었다. (417) 윌리엄 오캄이 위대한 업적은 그가 유명론(唯名論)을 쇄신한 것을 들 수 있다. 유명론은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 공의회수위설로 알려진 운동을 개혁하는 데 산파역을 하였다. 그것은 또한 마르틴 루터를 통하여 개신교의 신학이 탄생하도록 간접적인 영..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6부] 제22장 : 기독교 진리에 대한 토마스 아퀴나스의 요약 1870년 교황 레오 13세기 그의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에서 아퀴나스의 신학을 가톨릭 신학의 규범으로 삼았다... ‘천사의 박사’(Angelic Doctor)... 교황 피우스 5세가 ‘만물박사’라는 칭호를 주었다... 5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와 20세기 후기의 오스트리아의 칼 라너 사이에 서방측 가톨릭 전통의 유일한 최대의 신학자로 여겨진다. (394-395) # 아퀴나스 저작의 신학적인 문맥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옥스퍼드와 파리와 같은 대학교에서 13세기와 14세기의 스콜라 신학자들에게 신학과 철학은 분리될 수 없었다... 신학은 “학문의 여왕”이어야 하고 철학은 하인 혹은 시녀가 되어야만 했다... (395) # 아퀴나스의 생애와 경력 1224/1225년 이탈리아 로카세카에서 태어났다...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6부] 제21장 : 하나님 인식방법에 대한 안셀무스와 아벨라르두스의 변론 후스토 곤잘레스는 안셀무스를 위대한 스콜라 철학자로 보고 있다. “안셀무스는 의심할 것 없이 그의 시대에 가장 위대한 신학자였다. (그는) 13세기의 위대한 스콜라 신학의 길을 닦아 놓았다... 안셀무스와 더불어 기독교 사상사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375) 서양 철학사에 명성을 떨친 안셀무스의 주장은 하나님의 존재를 위한 소위 존재론적인 논증에 관한 그의 계통적인 서술이다... 기독교 신학에 대하여 그는 구속(그리스도의 십자가상에서의 희생)에 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데 기여하였다... 세속적인 것과 또는 왕들에 의한 교회 지배에 대하여 완강히 반대하였다... (375) # 캔터베리의 안셀무스의 생애와 경력 1033년 이탈리아 알프스 지방 아오스타에서 출생... 베데딕트 수도원... ..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6부] 학문의 여왕에 대한 전설 : 스콜라주의 부흥과 왕좌에 오른 신학 스콜라 신학은 유럽에 세워졌던 개혁적인 수도원 종단들로부터 탄생했고 파리와 옥스퍼드와 같은 새로운 대학들에서 꽃을 피웠다... 대성당과 수도원 학교와 대학들로부터 스콜라주의로 알려진 새로운 종류의 신학운동이 일어났다. (369) “스톨라 철학은 본질적으로 본래부터의 이성적이며 모순이 없는 기독교 신학에 대한 방법론적이며 철학적인 논증을 시도한 하나의 운동이다” (370) 수많은 중세 스콜라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은 어떤 현실적인 중요성에 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을 힘입어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스콜라 철학의 인식론은 낙천적이었다. (370) 중세 스콜라 철학... 1) 신학 안에서도 인식에 이르는 통로로서 인간의 이성을 열렬하게 받아들..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5부] 제20장 : 대분열 : 하나의 전통이 두 개의 전통으로 나누어지다. 동방교회는 사제들의 결혼을 언제든 허용하고 있다. 독신 요구는 오로지 수도사들에게만 국한되었다. (361) 로마 가톨릭 전통은 사제들의 독신주의를 점차 발전시켜 나갔다. (362) 분열의 근본적인 원인은 교회사가 야슬로브 펠리칸이 말한 “지적인 소외감”에 있었다... “그리스인들의 신학사상이 단순히 이것이다 혹은 저것이다를 떠나, 그들의 신학하는 방법 자체가 라틴 서방인들에게는 낯설었다.” ... 그리스 동방교회 신학하는 방식은 보다 신비적이고 사색적이었고 예배의 권위와 신자들의 경건, 그리고 비공식적이며 문서로 작성됨 없이 축적되어온 동방 기독교 전통을 강조했다. 반면에 라틴 서방교회의 신학하는 방식은 보다 법률적이고 실제적이었으며 교회법이나 객관적인 규범들의 권위들을 강조했다. (362) 교황권과 “..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5부] 제19장 : 동방측 교회가 동방정교회가 되다 1054년 이후로, 양측은 서로 스스로를 보편적이고 정통적인 하나의 참된 대교회로 간주해 오고 있다. (344) 서방의 아우구스티누스... 동방의 오리게네스... (345) # 오리게네스의 항구적인 영향 오리게네스와 오리게네스주의가 533년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된 제5차 에큐메니컬 공의회에서 정죄되었지만, 오리게네스와 오리게네스주의는 동방측 기독교 사상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345) 오리게네스주의는 동방교회와 동방교회 구원론을 강력한 신-인 협동론으로 각인시켰다. 오리게네스의 신-인 협동론적인 구원론은 인간 자유의지는 은총과 협력한다는 점을 강조했고 하나님의 말로 형언할 수 없음과 불가변성을 강조했던 영적이고 신비적인 신론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오리게네스주의의 구원론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5부] 제18장 : 서방측 교회가 로마 가톨릭이 되다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부터 11세기 스콜라주의가 등장할 때까지 라틴 기독교 신학은 일종의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신학논쟁의 대부분은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거의 모든 논쟁의 대답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서 찾고자 했다. (330) # 반(semi) 펠라기우스주의 교회는 죄와 자유의지 그리고 은총의 중대한 문제들과 관련해서 중재적 입장과 다소 어정쩡한 자세를 취했다... 로마 가톨릭주의는 항상 온건한 아우구스티누스주의와 온건한 반(semi) 펠라기우스주의 사이 중간쯤에 남아 있었다. (331) 신학의 역사에서 가장 골치 아픈 질문들 중의 하나는 인간은 자신의 구원에서 과연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은 실제로 전혀 아무런 역할을.. 2021. 2.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