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331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5부] 제17장 : 아우구스티누스의 회심 :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타락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시대의 마지막임과 동시에 또 다른 시대의 시작이다. 그는 고대 교부들의 맨 마지막이며, 동시에 중세신학의 선구자이다. 고대신학의 주류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합류되었다가, 그에게서 중세 스콜라주의의 강물뿐만 아니라 16세기 개신교 신학의 강물까지 도도하게 흘러내려 온다. (301)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관한 강조와 인간의 절대무능,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 영혼의 의존” (301) 아우구스티누스주의는 절대은혜주의로 불리는 어떤 개념을 기독교 사상의 흐름에 도입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이러한 사상의 일부분을 “예정론”을 알고 있고 자동적으로 이것을 16세기 종교개혁자 존 칼뱅과 연결시킨다. 그러나 섭리와 구원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중심적인 사상은 보다 넓은 관점에서 이해되..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5부] 두 교회 이야기 : 동방과 서방으로 분열된 거대한 전통 서방측 교회와 동방측 교회 사이의 긴장들은 칼케돈 공의회 이후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이유들 때문에 더욱 깊어만 갔다. 서방교회는 점점 로마의 감독을 모든 기독교계의 최고의 수장으로 간주했고 동방교회는 콘스탄티노플(황제와 총대감독)을 기독교계의 중심으로 간주했다. (297-298) 1054년 동방과 서방의 대분열... 서로간의 성찬예식에 참여하지 않음... (298) 아우구스티누스 아우렐리우스... 오리게네스가 동방을 대표한 인물이었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을 대표한 인물이었다. 16세기 프로테스탄트의 위대한 종교개혁자들도 스스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추종자요 해석자로 간주하였다... 동방정교회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에 대한 해석들은 서구교회들을 분열과 심지어는 이단으로 인도했다고 믿고 있다... (..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4부] 제16장 : 계속된 갈등의 여파 칼케돈 이후의 논쟁들은 대부분 동방에서 일어났다. (280) 위격적 연합 교리의 모호성은 이해가능한 완벽한 신학과 교리를 추구했던 많은 동방교회 지도자들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 (281) # 동방에서 기독론 논쟁이 벌어지는 동안 서방 신학은? 자체적인 신학 문제... 구원의 본질, 특별히 구원받게 되는 인간은 구원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혹은 구원의 성취는 전적인 하나님의 사역인지에 관해 격렬한 논쟁에 휩쓸려 있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대부분 서방측 감독들에게 동방에서 벌어진 그와 같은 소비적인 갈등과논쟁은 관심 밖이었다. 그들은 테르툴리아누스가 오래 전에 이미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 믿고 있었고 동방측 교회가 이것을 칼케돈 공의회에서 인준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4부] 제15장 : 칼케돈 공의회의 기독론 5세기 중엽... 한 가지 교리, 즉 삼위일체론에 동의하고 있었다... (362)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은 세상의 구세주라는 점에 있었다. 예수는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이 되어야 했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했다. (263) 펠라기우스... 구원이란 전적으로 은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 일부분 인간 성취의 문제라고 생각... 안티오키아 학파 사람들로부터 은신처를 제공받았다. (264) 안티오키아 학파 사람들이 펠라기우스에게 보여주었던 동정심은 그들의 기독론이 선행을 통해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거짓된 복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한다고 보았다. 다른 말로 하면, 안티오키아 학파의 신학자들이 구세주의 자율적인 인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를 우리를 치..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4부] 제14장 : 네스토리우스와 키릴루스의 첨예한 대립 동정녀 마리아의 칭호... “테오토코스” ... “하나님의 담지자”, “하나님을 낳은 자” ... “테오토코스”라는 칭호는 예수의 참된 신성을 믿도록 하는 지시어이다. 마리아가 어린 소년을 낳았을 때 그녀는 하나님을 낳았다는 의미이다. (249) 네스토리우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레투스의 문하생? (250)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학자들은 인간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었던 반면 하나님의 아들은 한 종류의 존재, 즉 신이었다고 서슴없이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성육신은 마리아의 자궁에서부터 곧바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인간과 하나님 아들의 연합은 한 본성으로 된 신-인의 창조를 결과했다고 주장했다. (250) 428년 성탄절 아침...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의 칭호 “테오토코스”를 비난하는 설교를 했다....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4부] 제13장 : 그리스도를 둘러싼 안티오키아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충돌 # 성경 해석학의 차이 알렉산드리아의 성경 해석법은 그리스도 시대에 유대인 신학자이며 성경학자였던 필로에 의하여 확립되었다... 알레고리적인 해석... 예언서와 복음서들을 읽을 때 그들은 로고스의 감추어진 의미와 어디에나 존재했던 천상의 영적인 존재를 발견하려고 했다... (238-239) 안티오키아는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성경해석학으로 유명했다...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레투스... (238-239)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경향이었는데, 예수의 신성은 예수의 인성이라는 껍질 속에 감추어져 있는 영적인 보배와 같았다. “가현설”은 알렉산드리아 신학의 배경에 잠복해 있었고,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성경 해석과 기독론에 끊임없는 위험요소였다. 성경과 성육신의 물리적이고 역사적이며 창조적인 차원들..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4부] 다시 닥쳐온 교회의 다른 위기 : 기독론 논쟁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381년에 진정한 기독교 정통신학은 필연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며 참 사람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는 신앙을 포함한다고 선언하였다. (233) 기독론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 중요한 것은 인간의 구원 문제라고 보았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성부와 동등한)도 아니고 참 사람(우리와 동등한)도 아니라면 어떻게 그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신보다는 못하고 인간과는 다른 사람이 화해와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있겠는가? (235) 기독론 논쟁...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431년 에베소 공의회, 451년 칼케돈 공의회... (236) 칼케돈은 제4차 에큐메니컬 공의회로 간주된다. 이 공의회는 교리적인 “정의”를 내렸는데,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3부] 제12장 :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문제 해결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제2차 에큐메니컬 공의회)... 삼위일체 교리 확정... (204) 평범한 기독교인들도 신학적 논쟁에 참여함... (204) #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공헌 “아타나시우스가 없이는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사역은 불가능했다. 카파도키아 교부들 없이는 역시 아타나시우스의 사역도 그 최후의 결실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206) 세 명의 위대한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사역은 “삼위일체 교리를 명확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고 옹호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교회의 신앙을 체계화시키고 그것을 가능한 논리적으로 분명하게 설명하는 일이었다.” (206) 유노미우스주의로 알려진 악의적이고 공격적인 형태의 아리우스주의... 완벽한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단일성과 불가변성을 부인하며 결국 그것은 이교도의 위장.. 2021. 2. 26.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3부] 제11장 : 아타나시우스가 고수한 신앙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더의 뒤를 이어 328년 아타나시우스가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189) # 아타나시우스의 생애와 경력 328년부터 373년까지 45년 동안 알렉산드리아의 대감독과 총대감독으로 일했다. 그는 자신의 생애 중 3분의 1을 망명지에서 보내야만 했다. (189) 여호와의 증인의 신학을 “정통”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은 아타나시우스의 공헌이 지대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190) “그가 활동했던 4세기 중엽 몇십 년 동안(340년부터 380년까지) 교리의 역사는 국가와 교회의 역사처럼 보다 더 음모적이고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190) 루터의 격언, “할 수 있으면 화해하라. 그러나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진리는 사수하라!” (191) 니케아 공의회 이후 사벨리우스.. 2021. 2. 26. 이전 1 ··· 133 134 135 136 137 138 139 ··· 14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