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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도서 정리]

로저 E. 올슨, 『이야기로 읽는 기독교 신학』 [제4부] 제15장 : 칼케돈 공의회의 기독론

by [수호천사] 2021.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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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세기 중엽... 한 가지 교리, 즉 삼위일체론에 동의하고 있었다... (362)

  •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성은 세상의 구세주라는 점에 있었다. 예수는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참 하나님과 참 인간이 되어야 했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했다. (263)

  • 펠라기우스... 구원이란 전적으로 은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 일부분 인간 성취의 문제라고 생각... 안티오키아 학파 사람들로부터 은신처를 제공받았다. (264)

  • 안티오키아 학파 사람들이 펠라기우스에게 보여주었던 동정심은 그들의 기독론이 선행을 통해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거짓된 복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한다고 보았다. 다른 말로 하면, 안티오키아 학파의 신학자들이 구세주의 자율적인 인성을 강조함으로써 그를 우리를 치유하시는 신으로 간주하기보다는 하나의 모범자로 교묘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의심이었다. (264)

  • 431년 에베소 공의회에서 로마의 서방 감독들은 펠라기우스 정죄를 조건으로 내걸고... 그 대신 네스토리우스 정죄하고 파면하는데 찬성하기로 약속했다. (264)

  •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기독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으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로고스로서 신적 구세주이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로서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 신성과 인성을 겸비하신 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를 통해, 그 안에서 구원의 역사는 인간 안에 있는 죄와 죽음의 상처들을 치유하는 로고스의 활동이다. 믿음과 성례전을 통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은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구원론에 관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강조점은 인간의 성취보다는 은총에 있었다. (265)

  • 구원의 은총은 성육신에서 성취되었다.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최선의 과제는 회개와 성레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제자가 됨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265)

 

# 에베소 공의회 후 계속된 논쟁

  • 로마는 에큐메니컬 공의회를 통해 펠라기우스를 정죄하는 성과... 키릴루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네스토리우스와 안티오키아 학파의 기독론을 정죄시켰다. (266)

  • 안티오키아 학파는 애착을 갖고 주장했던 두 본성론이 키릴루스에 의해 인정받았다는 성과를 거두었다. (266)

  • 키릴루스의 후계자 디오스코루스... 그리스도의 두 본성론을 전적으로 거절했으며 신적인 로고스의 한 본성으로 성육신연합 이후의 한 본성교리를 주장했다. (267)

  • 안티오키아의 신학자 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 433년의 재연합신조는 안티오키아의 일방적인 승리를 말해주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는 연합 이후 한 본성교리를 배제하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교리를 정통신앙으로 간주했다. (268)

 

# 유티케스와 유티케스파 논쟁

  • 유티케스는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신학을 강력히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과 본질공유라는 주장을 거절... 안티오키아 신학자들에게 유티케스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참 인간이요 참 신으로 표현했던 니케아 신앙을 분명히 거절한 것으로 보였다. 그들은 거봐라! 우리가 알렉산드리아의 기독론은 결국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너희들에게 말하지 않았느냐라고 반응했다. (268)

  • 유티케스는 키릴루스의 기독론적 원리, 속성의 교류를 일방적으로 극단화시켰던 것 같다. 그는 신적인 특성이나 속성들은 그리스도의 인성에 스며들고 변화를 유발시켰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 역의 과정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실재는 로고스와 차이가 없으며 성육신 과정에서 신성에 흡수되어 버렸다... (268-269)

 

# 강도회의(Robber Synod)

  • 448년에 디오코루스는 유티케스를 정죄하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감독회의를 교묘하게 조정하였다... 겉으로는 유티케스를 정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콘스탄티노플의 수도사(유티케스)를 알렉산드리아로 피신시킨 다음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유티케스로 하여금 안티오키아 학파의 지도자들과 콘스탄티노플 총대감독과 대결하도록 추진했기 때문이다. (270)

  • 449, 디오스코루스는 중무장한 깡패들(수도사들)과 함께 참석하여 재빨리 회의 전체를 장악해 버렸다. 그리하여 유티케스의 교리인 연합 이전에는 두 본성, 연합 이후에는 하나의 본성을 정통 교리로 인준했다. (271)

  • 교황 레오 1세의 서신... 유티케스를 정죄하고 정통 기독론을 세우기 위함... 플라비안은 교황이 보낸 서신을 낭독하려 했다. 그러나 디오스코루스가 동원한 수도사들이 그를 너무 심하게 때리고 두들겨 팼기 때문에 그는 얼마 후에 죽고 말았다. (271)

  • 이 회의는 한 동안 제4차 에큐메니컬 공의회(2차 에베소 공의회)로 평가받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정통적이고 보편적인 공식교리는 그리스도가 한 본성을 지닌 신-이며 그의 인성은 신성에 흡수당했다는 것이었다... 니케아 신앙 자체도 위태롭게 되었다... (271)

  • 교황 레오는 황제에게 회의 결과 번복을 요구... 황제는 레오의 요구사항을 거절함... (272)

  • 황제 테도오시우스 2세가 450년 낙마사고로 사망... 황제의 누이 풀케리아와 그녀의 배우자 마르키안은 449강도회의의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작업에 돌입했다... 451년 칼케돈에서 공의회 소집... (272)

 

# 칼케돈 공의회와 칼케돈 신조

  • 디오스코루스는 추방되어 사막으로 내쫓겨났다... 알렉산드리아와 안티오키아가 주장했던 진리는 보존되어야 했다. 반면 양측이 고집스럽게 주장했던 극단적인 표현들은 배제되어야 했다. (273)

  • 칼케돈 공의회에 참석했던 감독들은 네스토리우스(이미 죽은)와 유티케스를 정죄하는 절차를 밟았다. 전반적인 기조는 단연 반() 알렉산드리아였다. 칼케돈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 총대감독의 직위를 로마 감독과 맞먹는 위치에 올려놓았다. (275)

  • 로마의 레오는 칼케돈 신조의 기독론적인 표현의 핵심을 수용했다. 왜냐하면 그가 썼던 것을 본질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테르툴리아누스의 고대 신조, 즉 예수 그리스도는 두 본성들 혹은 실체들의 한 위격이라는 신앙은 동방측에서 수용되었다. 네키아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하나님을 셋의 누구(whos)와 하나의 무엇(what)으로 선언했던 것처럼, 칼케돈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의 누구와 둘의 무엇들로 선언했다. 그래서 안티오키아 학파들은 알렉산드리아의 기독론에 대한 승리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아들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두 본성들의 어떤 분리나 분할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알렉산드리아 신학자들은 안티오키아의 기독론에 대한 승리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두 본성을 아주 강하게 주장했고 그들의 연합에서 혼합이나 변화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275)

  • 동방측 내부의 분열... 시리아 교회들과 시리아 동쪽 지방(페르시아와 아라비아)에 있는 교회들은 새로운 신조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고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네스토리우스파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분리했다. 대부분의 이집트 교회들도 역시 독립적인 단성론(하나의 본성을 믿는 것) 교회를 세우기 위해 대교회로부터 분리하였다. 이집트의 콥트 교회는 그때 분리된 교회로서 현재가지 남아 있다. (275-276)

  • 칼케돈 신조... 그 신조가 표현하고 구현하고 싶었던 교리는 위격적인 연합인데, 이것은 키릴루스의 설명을 약간 변경시킨 것이다. “속성의 교류는 안티오키아 신학자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해 포함시키지 않았다... 칼케돈 신조는 비의적이며 매우 추상적이고 철학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여러 가지 왜곡들에 대항하여 성육신의 신비를 보호하고 표현하려 했던 시도였다. (276)

  • 칼케돈 신조의 진정한 핵심은 칼케돈의 네 가지 울타리 - “혼합이 없고, 변함이 없고, 분할이 없고, 분리가 없다는 것로 알려진 것에 있었다. (277)

  • 혼합이 없고, 변함이 없다는 것은 신성과 인성으로부터 제3의 어떤 것을 만들어 내는 위격의 일치를 보존하려 했던 유티케스주의 이단과 단성론의 이단으로부터 신비를 보호한다. (277)

  • 분할이 없고, 분리가 없다는 것은 신성과 인성을 두 다른 위격들로 분리하여 인성과 신성 사이의 구분을 강조하려 했던 네스토리우스주의 이단으로부터 신비를 보호한다. (277)

  • 칼케돈 신조는 만일 당신이 이 네 가지 울타리들 중 어느 하나를 위반하지 않는 한, 당신은 여러 다른 방식으로 성육신의 신비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277)

  • 칼케돈 신조 배후의 인물... 로마의 레오... 키릴루스... 이들 두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위격을 영원한 하나님의 로고스로 이해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영원한 하나님의 로고스는 자기를 겸손하게 낮추어 스스로 인간본성을 취했는데, 인성은 그 자체 특별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비인격적인인성이다. 그 인격적인 의식, 의지, 행동의 중심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 로고스이다. (277)

  • 그러므로 정통적이고 보편적인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본성을 지닌 하나님이었고 하나님이며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로 고양된 인간이 아니며 하나님과 인간 존재의 어떤 혼합도 아니다. 성육신의 신비는 바로 이 같은 사실에 놓여 있다. 즉 신비란 단 하나의 개별적인 인격적 실재 안에 신성과 인성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 안에 두 본성에 본질적인 모든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277)

  • 프로테스탄트 교파들... 칼케돈 신조가 신의 무감각성이나 불변성의 과거 원리를 반영하는 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278)

  • 마르틴 루터는 니케아와 칼케돈 신조를 기독교 교리의 훌륭한 이정표로 포용함과 신의 무감각성을 믿는 신앙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아들도 성육신을 통해 피조물들의 경험을 겪는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속성의 교류를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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