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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논문 정리]

“한국기독교장로회 새 역사 50년의 회고와 전망” - 연규홍(2003)

by [수호천사] 2021.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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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연구 44(2003.12), 203-239.

 

  • 한국기독교장로회 새 역사 50주년... 희년... (203)

  • 기장의 새 역사는 무엇인가? 세 가지 전제 ... 1) 교회는 비록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라 할지라도 이 땅에 존재하는 한 허물과 죄를 가질 수 있다는 것... 2) 교회는 성서의 말씀에 비추어 언제든지 올바른 교회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 3) 교회의 개혁은 교회만의 개혁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인간에 대한 책임으로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 (203-204)

  • 기장의 새 역사 운동은 교회는 개혁되었고, 또한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교회 갱신을 지표로 한국 교회의 개혁을 지향하며 교회만을 위한 교회가 아닌 세상을 위한 교회로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지향하였다. 이것이 기장의 새 역사의 의미이다. (204)

 

1. 해방 후 한국 교회와 조선신학교

 

  • 대다수 신학교들이 교회들에 의해 설립되어지는 것과 대조적으로 기장은 신학 운동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204)

 

1) 남한 교회의 재건과 남부 총회

 

  • 8.15 해방은 일제의 잔재 척결과 자주적인 통일 민주국가 형성과 함께 한국 교회의 개혁과 주체성 있는 한국 교회 형성이란 역사적 과제를 동시에 부여하였다. (205)

  • 북한 교회는 출옥 성도들의 교회 재건 원칙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소련군의 점령 하에서 교회에 대한 감시와 탄압에 대응하기 위해 교회 재건을 서둘렀다. 남한 교회는 19459월 새문안교회에서 남부 대회로 모여 교회 재건을 추진하였다. (205)

  • 감리교를 선두로 각 교파가 교파 환원을 선언하며 장로교도 1946612일에서 13일까지 승동교회에서 남부 총회로 모였다. (205)

  • 남부 총회 : 회장 배은희 목사, 부회장 함태영 목사를 추대함... 1) 헌법을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개정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한다. 2) 27회 총회가 범과(犯過)한 신사참배 결의는 이를 취소한다. 3) 조선신학교를 남부 총회 직영신학교로 한다. 4) 여자 장로직 설정 문제는 남북 통일 총회 시까지 보류한다. (206)

  • 남한 교회 재건의 정통성을 가진 남부 총회가 다음과 같은 조선신학교 설립 이후 교육 과정에 얽힌 장로교계의 논란을 일단락시키고 공식 교육기관으로 승인하였다는 것... (207)

 

2) 조선신학교 설립과 성격 문제

 

  • 조선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신학의 자유를 지향했다... 1) 우리는 조선신학교로 하여금 복음 선포의 실력에 있어서 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학적, 사상적으로도 세계 수준에 도달하도록 할 것... 2) 조선신학교는 경건하면서도 자유로운 연구를 통하여 자율적으로 가장 복음적인 신앙에 도달하도록 지도할 것... 3) 교수는 학생의 사상을 억압하는 일이 없이 동정과 이해를 가지고 신학의 제 학설을 소개하고 다시 그들이 자율적인 결론으로 칼빈 신학의 정당성을 재확인함에 이르도록 할 것... 4) 성경 연구에 있어서는 현대 비판학을 소개하며, 그것을 성경의 예비적 지식으로 이를 채택함이요, 신학 수립과는 별개의 것이어야 할 것... 5) 어디까지나 교회의 건설적인 실제 면을 고려해 넣은 신학이어야 하며 신앙과 덕의 활력을 주는 신학이어야 한다. 신학을 위한 분쟁과 증오, 모략과 교권의 이용들은 조선 교회의 파멸을 일으키는 악덕이므로 삼가 그러한 논쟁을 하지 말 것... (207-208)

  • 평양신학교가 조선 교회를 위한 조선인 교역자양성에 주력하지만 조선신학교는 신앙으로나 학문에 있어 조선 교회를 위한 세계적인 교역자를 양성하고자 한 것이다. (208)

  • 한국 교회의 보수적인 교권주의자들은 신사참배 거부로 평양장로회 신학교가 폐교되자 이에 때를 맞춰 조선신학교가 개교한 것이 바로 친일적 성향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208)

  • 1939년 조선신학원 기성회 조직은 이미 1930년 초부터 송창근을 비롯한 진보적인 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구상되어 있었다. 단지 인적, 물적 요소들이 집결되어 개교한 시기가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을 때와 일치되었다는 것뿐이다. (208-209)

  • 일찍이 송창근은 한국에서 신학교육의 갱신과 새로운 신학 교육기관 설립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시대의 사명을 맡은 교역자이며, 교회를 관리하는 자도 교역자이며, 사회의 모범이 되는 자도 교역자입니다. 진실로 귀하고 중한 것이 교역자입니다. 이러한 교역자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오늘날 사회는 찾아 나선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없습니다. 이대로 그냥 있다면 장래에도 없을 것입니다. ... 충정으로 말씀드리오니 신학 교육에 종사하는 여러분들께서는 속히 방침을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초창기이고 경제 문제도 있을 터이니 그렇겠지만 여타의 사업을 정지하고서라도 완전한 시설을 하여 외국에 나가지 않고서도 넉넉히 공부할 수 있도록 오히려 교회의 지속적 발전과 큰 관계가 있다 하겠습니다.” (209)

  • 조선신학교는 한국 교회의 시대적 요청을 인식하며, 진보적 신학자들이 뜻을 함께 공유한 데서 시작하였다... (210)

  • 반선교사적 의도? 조선신학교는 설립 초기부터 세계 교회를 향한 선교사들과 연대하는 에큐메니칼 신학 노선을 포기하지 않았다. (210)

 

3) 성서 영감론 논쟁과 교단 분열

 

  • 해방 후 남북 장로교회 재건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는 북한에서 종교 자유란 이름으로 행해진 박해를 피해 내려온 개신교 지도자들과 본국으로 귀환하였다가 돌아온 외국 선교사들이었다. 이들은 한국 교회의 보수화와 교권주의 파장에서 커다란 변수로 작용하였다. 이것은 선교 초기부터 그들이 가지고 있던 식민주의적 선교 정책과 방법론의 당연한 결과였다... 해방 전의 위상과 권위를 찾고자 하였다... 한국 교회의 자주적인 지도력 양성과 신학 운동 노선을 규제해야 하였다. (211)

  • * 신탁통치는 그렇게 반대했으면서, 신학교육에서 자주적 지도력을 양성하려는 것에는 반대한 한국의 종교인 지도자들...

  • 조선신학교는 합리적으로 이사회 재편... 외국 선교부에 교수와 이사를 요청... 캐나다는 스코트 선교사를 보내줌...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는 유보적... 1) 교회 방침에 있어서 태초부터 순전통적인 성경 해석과 전통적인 신학을 가르칠 것... 2) 실질화하기 위하여 필요한 교수진을 퇴진시키고, 이것을 약속한다면 교수 한 사람을 보내고 이사회에 이사를 파송함과 동시에 경상비 얼마를 담당하겠다는 것... (211)

  • 평양장로회신학교 재학생 51명이 조선신학교로 편입한 후 총회에 제출한 진정서... 1) 김재준 교수는 웨스트민스터 신조 제1조를 범한다... 2) 조선신학교가 문서설을 주장하고 성서에 오류가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성서의 권위를 파괴한다는 것... 3) 성서의 고등비평 연구를 사용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배척해야 한다는 것... 4) 정통주의 신학자들로써 교수진을 강화하며 장로교 전통에 입각한 신학 교육의 완수를 위해서 중앙에 완전한 장로교 정통 신학교를 세워줄 것... (212)

  • 총회 진상조사위원회는 몇 번의 조사에서 조선신학교의 신학이 결코 성서의 권위를 파괴하거나 장로교 신앙고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212)

  • 1952년 대구에서 열린 제37회 총회는 총대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결의안을 가결하였다... 1) 조선신학교 졸업생에게는 일체 교역자 자격을 부여하지 않는다... 2) 한국신학대학 교수 김재준 목사는 목사직을 박탈하고 그의 소속 노회인 경기노회에 제명을 지시하여 이를 선포케 한다... 3) 36회 총회시 성경 축자영감설을 부정한 조선신학교 교수요, 캐나다 선교사인 스코트 목사를 심사하여 해당 노회에 명하여 처단케 한다... 4) 각 노회에서 위 두 교수의 사상을 옹호, 지지, 선전하는 것은 해당 노회에서 처벌한다... (213)

  • 37회 총회의 불법적 결의에 대해 황희섭, 정규태, 김병우 등 총대 31명의 이름으로 항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195263일 호헌위원회가 조직되고 이것이 전국의 지방으로 확산되어 노회 내에 싸움이 일기 시작하였다... 캐나다 선교부의 협력... (214)

 

2. 새 역사 운동과 한국 교회의 개혁

 

1) 38호헌 총회와 새 역사 운동

 

  • 38호헌 총회... 지난 36, 37회의 조선예수교장로교 총회의 과오와 불법 결의안 등을 거부... 복음주의와 신앙 양심의 자유와, 자주적 정신과 세계 교회주의 등을 대내외에 선언하였다. (215)

  • 1) 우리는 온갖 형태의 바리새주의를 배격하고 오직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의 자유를 확보한다. 2) 우리는 건전한 교회를 세움과 동시에 신앙 양심의 자유를 확보한다. 3) 우리는 노예적인 의존 사상을 배격하고 자립, 자조의 정신을 함양한다. 4) 그러나 우리는 편협한 고립주의를 경계하고 전 세계 성도들과 협력 발전하려는 세계 교회 정신에 철저하려고 한다. (216)

  • 새 역사란 한국 교회의 보수적, 교권적인 선교사 의존적 성격을 개혁하고 한국 교회의 자주적이며 주체적인 성격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216-217)

  • 김재준은 1956대한기독교장로회의 역사적 의의라는 글에서 우리 교단의 역사적 의의를 밝힌바 있다. (217)

  • 기장은 한편으로는 교단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제도 혁신과 더불어 세계 교회들과 함께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한 실천적 선교사업을 전개하였다. (217)

  • 교단의 제도 혁신의 방향을 지교회는 선교를 맡고, 노회는 교회 개척을, 그리고 총회는 정책 수립을 맡되 행정 체계는 총회를 중심으로 중앙 집권 형태로 나아가지만 선교 활동은 지교회와 노회를 중심으로 지방 분권체제를 지향이었다. 선교사들과 함께 한 협동사업위원회는 교단의 정치구조를 지교회와 노회 중심의 지방 분권제도로 역신하며 총회는 선교 중심적 구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217-218)

  • 해외 선교부 지원을 거부... (218)

  • 세계 교회의 에큐메니칼 운동의 적극적인 참여...

  • 한국기독교연합회(1959.10), 세계교회협의회(1960) 가입... (218)

 

2) 하나님의 선교와 새 역사 참여

 

  • 예언자적 사명의 길... (219)

  • 19604.19를 기점으로 역사 현실에 눈을 뜨게 됨... 기장은 이것을 초기 한국 기독교의 해방적 전통을 바로 계승하지 못하고 현실 재비 세력과 결탁한 한국 교회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였다... (219)

  • 본격적으로 기장이 민주화 통일운동 선두주자로 나가게 된 것은 1970년에 들어서이다. 4대 문서를 통해 기장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사회 선교적인 제도 형식을 갖추었다. (220)

  • 유신 체제에 대한 최초의 저항은 기장 교회 안에서부터 일어났다... 19721213일 은명기 목사 구속... 1973년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박형규 목사 등이 집단적으로 저항... 총회는 신앙과 인권 협의회를 개최함... 70년대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인권 선교를 위한 중요한 발전... (221)

  • 한신대학... 유신 체제에 항거... (221)

  • 기장의 4대 문서... ‘하나님의 선교를 교단이 공식 선교신학으로 밝힌 기장... 두 가지 차원에서 추진... 1) 한층 성숙한 자세로 세계 교회와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차원... 2)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들에 참여하는 봉사직 차원... (222)

  • 하나님의 선교... 1)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 2) 선교의 현장은 이 세계, 3) 선교의 목적은 인간화... 하나님은 교회라는 구조안에서만이 아닌 교회 밖에서도의 구원과 해방의 역사를 행하신다... 부르심에 응답... (223)

 

3) 한국 교회 개혁과 생명연대 운동

 

  • 기장의 사회선교에 있어서 민주화와 분리할 수 없는 것이 통일운동이다. (223)

  • 1972년 제57회 총회... “우리 교회는 몽매간에도 잊지 못하고 조국의 통일을 기원하여왔다. 이제 7.4 남북 공동성명을 기점으로 하여 공산주의독재 체제로 응결된 북한 당국자들과 대화를 통한 정치적 대결을 하게 된 마당에서 한국 교회 전체는 지금까지 대내적인 분파 의식을 지양하고 대동단결하여 민주적 남북 통일을 성취시킬 수 있기를 기약하며 자유 정신과 민주 역량을 주체적 총집결체가 되며 한국 민족의 복음화를 기어이 성취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223-224)

  • 통일운동이 본격적으로 기장의 선차적 선교과제로 대두된 것은 19805.18 광주 민중항쟁을 계기로 해서이다. (224)

  • 반민주 군사 독재정권이 남북의 분단 체제가 만들어낸 파생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 것이 1980년 광주 민중항쟁이다. (224)

  • 65회 총회가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은 이 민족의 분단을 극복하는 통일 운동을 선교적 과제로 수행하기에 앞서 먼저 교단 안에 개교회주의를 지양할 공동 선교적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는 결의를 하였다는 것이다. (225)

  • 최저 봉급제... 장로교 연맹의 구성을 제안... (225)

  • 1983년 기장이 작성한 신앙고백 선언서는 1980년대 우리의 우선적인 선교과제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자유에 기초한 민주주의와 화해, 평화, 남북 통일의 역사를 이룩하는 일이라 보았다. (225-226)

  • 68회 총회는 총회 안에 특별위원회 형식으로 통일문제연구위원회 설치... 69회 총회는 상임위원회로 결의... 70회 총회는 통일문제연구위원회와 북한선교위원회와 통합하면서 평화통일문제위원회로 조직을 개편함... (226)

  •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선언을 이끌어 냄... (226)

  • 1995년 평화 통일의 희년... 희년 정신으로 평화 통일의 선교 전선을 재정리하며, 이에 구체적인 실천과 준비를 하며 민중 연대적인 프로그램을 진행시켜 나갔다... (227)

  • 희년 선교의 집’... 북한 돕기 운동... (227)

  • 1997년 기장은 사회복지재단을 설립... (228)

 

3. 희년의 성취와 기장 교회의 미래

 

  • 오늘 기장은 광야를지나 약속의 땅에 들어왔는가? 그리고 희년을 성취하였는가? (229)

 

1) 죄책 고백을 통한 교회의 갱신

 

  • 기장의 새 역사 운동은 지난 50년 동안 이 세상과 역사에 대한 책임을 위해서 예언자적 정신을 가지고 비록 소수였지만 불의와 악에 저항하며 아니오를 분명히 해온 역사였다. (229)

  • 기장은 하나님 앞에 이 민족과 역사를 책임진 자들로서 이 죄책 고백이 그 원인론적 차원에서가 아닌 책임론적 차원에서 되어져야 할 것이다. (229)

  • (1) 신사참배 문제... 조선신학교가 일제하의 민족 말살과 종교 억압 하에서 그에 순응한 이들보다 더 앞장서 일제를 옹호하거나 그들의 종교정책을 선전한 적은 결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교자들의 순교 정신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30-231)

  • (2) 해방 후 조선신학교 건물의 무상 소유권 문제... 방법론적인 면에서 미군정의 힘을 이용하여 무상으로 소유하였다는 것이 그릇되었다는 것... 최소한의 배상을 하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이것을 교육 공간으로 전용했어야 할 것이다... 한신대학교나 총회 희년 회관 안에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여 사회적 환원을 해야 할 것이다... (231-232)

  • (3) 기장 공동체 안의 권력 지향적 행태 문제... 개별적으로 제1공화국에 깊이 관여한 함태영, 이남규 목사 등의 평가로부터 현 집권 세력과의 기장의 정치적 관계를 비판적 차원에서 새롭게 반성하고 짚어야 한다... 현실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비판 세력으로 남기 위해 우리 안에 기장으로 형성된 정치 권력이든 경제력이든 힘을 추구하는 논리로부터 벗어나 나눔과 섬김의 봉사적 교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232-233)

 

2) 은총과 생명, 그리고 나눔의 공동체

 

  • 기장은 한국 교회의 개혁 운동으로 지난 50년 동안 교회 일치와 에큐메니칼 운동에 전력해 왔다... (233)

  • 오늘 희년을 맞이하며 기장 안에 역동성과 에너지의 원천이었던 다양성의 구조가 그대로 존재하는가? 세상을 향한 열려진 교회로서 변화된 현실에 새로운 선교 영역을 확보하고 있는가? 그리고 작은 교회의 교회론적 평등성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가? (233)

  • 오늘날 희년 정신을 비춰볼 때 기장 안에 존재하는 다양성의 일치란 역동적 힘이 획일화, 편중화, 고정화되었지 않는가 하는 것... 교회도 세상 안에 존재하기에 그 지역성과 이념성을 비롯한 학적, 물적 배경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기장은 권력적 독점 관계를 극복하고 상호 존중의 다양성의 요소를 포괄해야 한다. (233-234)

  • 기장의 새로운 선교영역... 생명의 문제... (234)

  • 기장은 교단 안에 소외와 배제의 영역을 없애고 미자립 교회나 농촌 교회 등과 나눔을 통한 공생의 길을 모색해 가야 한다. (235)

 

3) 약속의 땅을 일구는 새로운 노력

 

  • 기장의 진보성과 토착성... (235-236)

  • 기장은 교단 이전에 신학 운동으로 출발한 독특한 성격을 가진다. 기장이 신학을 통해 한국 교회와 사회에 봉사하는 교단이라는 것을 뜻한다. (236)

  • 민중신학은 한국 신학이면서도 제3세계의 상황신학으로 세계 신학계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민중신학이 기장의 신학인가 하는 점이다.... 이유... 1) 신학의 사대주의적 발상... 2) 민중신학을 교회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 (236-237)

  • * 서양의 신학들 중에 교회 현장에서 적용되지 못하는 신학이 없을까?

  • 기장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살린 희년의 신학을 일구어 내야 할 것이다. (237)

  • 평신도 지도력 양성의 문제... 장기 교육 프로그램과 조직적인 관리체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37)

  • 기장이 새롭게 개척해야 할 선교의 장은 어디에 있는가? 기장의 오늘날 심각한 정체성과 위기와 성장의 지체는 바로 선교 이상(vision)의 부재와 그들을 교육하고 훈련할 선교의 장과 프로그램의 결여이다... 총회 직속의 에큐메니칼 훈련원같은 선교교육기관을 두고 전문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 (238)

 

맺음말

 

  • 아무리 훌륭한 과거라 하더라도 오늘 바로 살지 못하면 그것은 오히려 더 누추하게 된다. 반면 과거의 허물과 단점들일지라도 그것을 오늘 우리가 깊이 반성하고 새롭게 자각하여 도약의 밑거름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새로운 역사 창조의 게기가 될 것이다. (239)

  • 기장의 새 역사 50, 하나의 마침표가 아닌 쉼표일 뿐이다... 희년 이후 새롭게 미래를 책임져 나갈 기장의 선교적 소명의 또 다른 출발점인 것이다.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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