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철하 (아세아연합신학대 교수, 조직신학)
『신학사상 50집』(1985), 512-531.
I. 김재준 신학의 배경과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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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당시의 <십자군>에 게재되었던 글에 나타난 신학사상의 골자는 신정통주의 신학사상 그대로였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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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공전집』 마지막권 마지막 부분 “내가 영향받은 신학자와 그 저서”에서 그는 바르트, 브룬너의 영향을 솔직히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은 그가 영향을 받은 유일한 신학자들이기도 하다. (512)
1. 자유주의자 김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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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대로의 세계를 즐긴다”, “무슨 책을 읽어도 참고로만 대하는” 태도는 사실 “나”는 절로 난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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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경하는 사람 – 바울” (513-514)
2. 신앙의 용어와 현대어와의 혼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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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목사는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 대해서도 극히 현대적인 또 자연적인 묘사를 한다.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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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의 인물들을 현대의 용어로서 설명하여 볼 때 이 역사적 인물들이 신앙의 용어를 즉 성경의 용어를 자연적으로 말하게 될 수 있는가?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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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용어에서 “신앙의 말”들이 실감나지 않는다. (* 이건 필자의 생각일뿐...) (515)
3. 김재준에 있어서의 독서와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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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속의 그리스도는 있으나 마나한 것이라 해도 좋지 않을까? ... 독서 속에 있는 그리스도교와 독서하는 그 사람이 독서와는 별도로 가질 수 있는 그리스도교 사이에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515)
4. 신정통주의신학과 김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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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목사의 신학사상은 역시 신정통주의신학에서 따온 “그리스도중심”주의 또는 “말씀”의 신학이었던 것 같다.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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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은 전연 자유주의 내지 합리주의에 두고 보니 완전히 불신앙에 떨어지는 것을 면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신정통주의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학을 붙든 것이라 보여진다. 그러므로 김재준 목사는 언제나 정통주의, 보수주의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대결하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대하다.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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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신앙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으니 부득이 정통신앙의 입장과 싸울 수밖에 없었으며 그와 같은 입장을 깨뜨리고 보니, 적극적으로 믿는 것을 내세워야 하겠는데 이를 위해서 신정통주의 신학의 유일의 진리인 그리스도를 내세우기에 이르렀던 것 같다. (517)
5. 김재준의 신학교육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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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학원의 자유주의, 프린스턴의 보수주의... 다시 자유신학의 경향을 띤 웨스턴신학교에 가서 학위를 취득... (517)
II. 김재준의 신정통주의 성경관
1. 신학의 이대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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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1월 시민관에서 열렸던 “대전전후 신학사조의 변천”이란 제목하의 강연에서 그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더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그는 현대의 특색인 “비판”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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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현대주의 또는 신신학파 vs 보수주의, 근본주의, 소위정통주의파 (518)
2. 신정통주의신학과 성경무오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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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주의신학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최후까지 지키려는 아성은 ‘성경문자무오설’ 즉 “성경책과 계시와의 전연 동일시하는 태도”라고 규정짓고, 또 “자유주의신학자의 태도는 어디까지나 인간이성의 경험에 의하여 경험에 의하여 궁극의 진리를 규정하려는 사유양식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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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의 보수주의와 극단의 자유주의가 무력화함에 따라 이 공허를 느끼는 신학계에 마치 큰 회오리바람 같이 동서양을 휩쓸어 몰려든 제삼세력이 있는데 그거슨 스위스 신학자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룬너 등에서 시작되어 미국의 니이버, 독일인으로 미국에 피난한 폴 틸릭히 등의 거성들이 선두에 선 소위 ‘신정통’ 신학운동”을 든다.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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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목사는 신정통주의 신학의 특질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1) 정통주의 신학자들의 성경문자무오설을 부인하며, 따라서 성경비판학을 전적으로 시인한다. (2) 정통주의 신학자가 주장하는 ‘교리’가 영원한 진리와 사건을 객관적으로 적절하게 전달하는 불변의 기술이라는 것을 부인한다. (3) 신정통주의 신학에서는 적극적으로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신하는 데 그것은 문자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인격을 중심으로 한 신앙적인 의미에서이다. (519-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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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절대무오설과 성경무오설... 목적영감론 (520)
3. 신정통주의신학과 전통적 신학의 차이점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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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으로서 거기서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상봉”을 이룩하면 그만이지 그 이상의 진리성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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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관의 문제... 성경이 각 문장이나 단어가 전하는 진리를 그대로 진리로서 받아들이냐 아니면 그리스도교의 진리는 그와 같은 문장적 진리가 아니고 “만남으로서의 진리”라는 진리관의 입장이다. (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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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통주의신학의 변증법적 논리... 문장적 진리의 배후에 놓여 있는 과학과의 갈등을 피하려는 동기... (521)
4. 과학과 성경계시와 신정통주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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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진리가 성경의 한마디 한마디의 배후에 놓여 있고, 우리가 이 한 마디 한 마디를 영감된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담은 의미를 깊이 상고함으로써만 그와 같은 진미를 맛볼 수 있다... 성경이 축자영감설이 관심을 두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 축자영감설에 대한 애절한 변호...)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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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주의는 성경의 말씀들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성경이 말하는 초자연적인 신앙내용을 모두 그대로 믿고 소망을 가지는 일이요... 신정통주의는 그 모든 신앙을 비웃고, 그의 한게는 현대과학적 세계관에 국한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와의 만남의 사건을 체험하는 영적 체험으로 그치자는 것... (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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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통주의의 한계(?).. 1) 성경의 더 풍부한 진리내용을 다 파괴하여 버리는 과오를 범하고 있으며, 2) 성경의 총체적 진리를 어떤 특수체험으로 단순화 내지 추상화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으며, 3) 신정통주의가 제시하려는 그리스도도 사실 그 정체에 있어서 그것이 참그리스도인지 의심이 가게 된다. 성경의 단순성 속에 증거되는 그리스도가 아닌 비신화화되고, 초자연적인 형이상학적 성격이 빠져버린 특수 국면만 남은 그리스도상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52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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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靈長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자연계를 초월할 수 있는 힘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기에 인간이 영생을 얻어야 할 필요도 있고, 또 인간이 신화를 가지게 되는 연유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비신화화해서는 아니된다. 인간을 비신화하고 세속화하는 일은 인간의 동물화와 다를 것이 없다. 우리가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하느라고 정치활동도 해보고, 남산에도 끌리어 가보고, 사회정의도 부르짖어 보았지만 언제나 문제로 되는 것은 영성의 빈곤에서 오는 허탈감이 아닌가! (* 그런데 이게 소위 정통주의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가? 정통주의는 더 허무한 허탈감을 주는 것이 아닌가?)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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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통주의의 오류는 성경의 진리의 구체성을 파괴하는 현대과학 정신에 동참하였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유비판 정신을 가지고 출발하였던 김재준 목사는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좋은 신앙적 탈출구를 찾았지만 결국 같은 오류에 빠졌던 것을 볼 수 있다. (523-524)
5. 자유주의신학에 대한 피상적 取扱
- 지금 여기서 지적하려는 것은 김재준 목사의 신학문제 취급이 너무나 피상적인 성격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524)
6. 축자영감설의 참뜻과 김재준의 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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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문자적 진리 또는 축자영감설의 의도하는 바를 지나치게 왜곡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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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목사는 축자영감설을 어찌하든지 모순에 찬 것으로 보여야 하였기 때문에 축자영감설에서 귀결되는 듯한 각종 지엽적인 모순을 지적하기에 급급하다.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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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자영감설이 의도하는 점은 무엇인가? 성경의 말씀 한 말씀 한 말씀을 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귀중히 여기고 거기서 진리를 찾자는 것이다... 성경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우리에게 신앙의 눈을 장만하여 준다.. 성경책을 펴 놓고 그 한 말씀 한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놀라운 힘을 경험해 오는 우리는 그 일점 일획이 중요함을 절규하지 않을 수 없다. (524-527)
7. 영감에 있어서의 성경기자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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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기자들이 눈에 보이는 세계밖에 모르고 죄인된 육욕에 눈이 어두원진 자연인과 다른 점이 바로 그들의 영적 자유에 있는 것이다.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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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기자가 구약성경을 인용할 때 얼마든지 자유롭게 달리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달리 표현하느냐를 따지지 말고 다만 그 달리 표현된 한 마디 한 마디가 보여주는 진리를 배우기에 힘쓰면 그만이다.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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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의 기자들은 예수의 행적과 그 말씀을 사실 그대로 기록하기에 힘쓴다. 그러나 각 성경기자들은 각각 사건 취급의 자유를 가지고 기록하고 있다. (*성경기자의 자유... 성경해석자의 자유는?) (529)
III.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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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종교성의 수요를 만족하기에는 문자적 종교적 해석법 밖에는 없다고 보여진다.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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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목사에 대해... 1) 그는 현대인의 지성에 공감하여 성경 내용의 문자적 진리에 설수 없었다. 2) 따라서 그는 신정통주의신학에서 신앙적 탈출구를 찾았다. 3) 그는 문제의 소재가 더 깊은 곳에 놓여 있음을 간과하고 축자영감설을 기계적 영감설을 주장하는 것으로 곡해하였다.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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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룡 박사와 김재준 목사가 논쟁한 신학 문제의 참 쟁점은 그리스도교의 성격문제에 있다. 성경 계시가 담고 있는 광대하고도 심오한 종교진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우리의 영적 양식으로 삼느냐, 그렇지 않으면 현대과학이 마련해 놓은 과학적 세계관을 근저에 깔면서 서양의 휴머니즘의 인간의 철학적 자기 이해의 거울 속에 미친 계시진리의 어떤 단편을 기초개념으로 한 각종 신학체계에 따른 추상적 그리스도교를 부단히 재구성하여 나가느냐의 문제다. (* 올바른 신학[?]을 붙잡은 박형룡이 진정 인간 해방의 예수를 이후 학문적인 분야에서 이룩하였는가?)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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