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서가, 그리고 삶] 학문으로 삶을 살아낸 겸손한 이의 연구실을 찾다 – 정진홍 이화여대 석좌교수
출처 : 기독교사상 53(8), 2009.8, 185-192
장동석
정진홍 교수는 1937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문리과대학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명지대와 덕성여대 교수를 거쳐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쳤다. 이후 한림대 한림과학원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이화여대 석좌교수로 종교학을 가르치고 있다.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이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종교를 바라보는 문법의 전환을 제시한다”는 평을 듣는 그는 1980년대 이후 종교학을 신학 일변도로 치우쳐 있던 주변 학문의 자리에 벗어나 종교 현상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와 문학’, ‘종교와 예술’, ‘신화와 역사’ 등 문학적 수사로 채워졌던 그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서 명강의로 손꼽혀 왔다. 저서로 『열림과 닫힘』, 『잃어버린 언어들』, 『엘리아데 종교와 신화』, 『고전, 끝나지 않는 울림』, 『만남, 죽음과의 만남』, 『경험과 기억』, 『종교와 과학』, 『종교문화의 논리』 등이 있고 시집 『마당에는 때로 은빛 꽃이 핀다』가 있다. (185)
# 계속해서 읽으면 글이 스스로 자기를 설명한다
정진홍 교수는 책을 읽을 때마다 주인공과 교감하는 경험을 쌓곤 한다. (186)
셋째 할아버지는 당시 중학교 1학년이던 정 교수에게 『효경』을 읽히셨다. 어릴 적부터 한자를 배웠지만, 뜻과 토를 달아 가르쳐주신 할아버지는 정 교수에게 “되풀이해서 읽으라”고 강조하셨다. 그렇게 한 쪽을 50번 씩 읽는 것이 정 교수의 하루 일과였다.... 한 책을 50번 읽으면 누구라도 외울 터, 인터뷰 중에도 정 교수는 『효경』의 첫 머리를 줄줄 외며 당시를 회상했다. 할아버지는 “읽고 또 읽으면 마침내 ‘문리’(文理)가 트인다”고 말씀하셨고 “계속해서 읽으면 나중에는 글이 스스로 자기를 설명한다”고 가르치셨다. (187)
정 교수는 되풀이해서 읽는 것, 즉 글이 스스로 자기를 설명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종교현상학’의 본질을 설명했다.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즉 내가 가진 이해(전이해)를 판단의 근거로 삼지 않고 객체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것이 현상학의 기본 전제이다. 이것이 후설이 말한 “진정한 인식”이기도 하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어떤 권위에 의지해서 읽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정직하게 읽다보면, 성경의 텍스트 자체가 스스로 발현한다는 것이다. (187)
# 책을 읽는데도 절제의 미덕 필요
어린 시절 독서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정리해주신 셋째 할아버지는 “너무 책을 많이 읽으면 허황되게 되느니라”는 말로 독서에도 절제의 미덕이 필요함을 가르치셨다. 덮어놓고 읽는다고 그것이 삶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되읽어 그것을 삶의 방편으로 삼아야 한다. 정 교수는 “학문하는 자세도 이와 같아서 책에만 빠지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책으로 현실을 판단해서도 안 되고, 현실을 책에만 담아 넣으려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188)
헤겔의 역사철학과 종교 인식이 그의 책에만 있고 인류사, 즉 인간 경험에는 없다는 비판에 직면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책이 현실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이 있은 후에 개념이 생기고 학문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책의 개념으로 세상을 규정하려고 한다. 책과 현실, 둘 사이에 적절한 긴장과 절제, 이것이 바로 학문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길인 셈이다. (188)
# 단테, 우찌무라 간조, 함석헌, 그리고 김재준
정 교수는 “『신곡』을 읽으면서 또 다른 차원의 상상력이 트였다”면서 “된다, 안 된다는 이분법적 사고만을 강요하던 교회의 가르침과는 달리 사고의 폭이 내 마음대로 넓어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188)
우찌무가 간조의 『구안록』도 읽었는데, 역시 무교회주의 그룹에 속해 있던 이제각 선생의 영향이었다. 또한 함석헌 선생의 시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도 접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함석선 선생과 그의 저작에 대한 평가가 달라졌지만 당시로서는 “크리틱하면서도 그의 사관이 옳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대학에 진학해서도 함석헌 선생의 강연을 찾아다녔고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 실망 중에는 〈사상계〉에 실린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한다’는 글도 한몫했다. 정 교수는 “읽고 그냥 감동하면 되는데, 예언자는 반드시 오만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내밀한 고백을 내놓는다. 그러나 함석헌 선생의 글에 압도된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그를 통해 실존적 고민을 키워간 것 또한 사실이다. (189)
한편 김재준 목사의 『낙수』와 『낙수 이후』를 읽으면 “도그마에 휩싸인 한국교회에도 이처럼 지성적치고 신학적인 신학자가 있구나”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낙수(落穗)란 가을걷이 후에 논밭에 떨어져 있는 곡식의 이삭을 의미하는 말로, 추수 후에 가난한 사람들이 주어갈 수 있도록 하는 ‘또 하나의 추수’이다. 『낙수』와 『낙수 이후』는 정 교수에게 일상과 학문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기에 충분했다. (189)
# 자유로운 영혼들의 피난처, 문학
신학에 매력을 잃고 찾아낸 길이 문학이다. 문학은 제약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추천이나 평론에 얽매이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영혼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시와 소설인 셈이다. 정 교수는 “내 마음대로 읽고, 이야기하고, 판단하고 혼자서 욕도 한다”면서 문학의 묘미를 말한다. (189)
정 교수는 『타고르 전집』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의 시 〈더 가드너〉 67편을 영어로 읊조렸다. 새에게 날개를 접어서는 안된다고 노래하는 타고르. 숱한 젊음들에게 “네 날개를 접어선 안 돼”라고 노래한 타고르의 본을 따라, 정 교수도 “희망을 가지고 살라”는 이야기 대신 “네 날개를 접으면 삶의 접히는 것이고, 날개를 펴는 순간 삶이 시작된다”고 충고한다. (190)
정 교수는 2003년 7월 『고전, 끝나지 않은 울림』이라는 책을 선보였는데, 정 교수가 평생 곁에 두고 되읽은 문학 작품에 대한 내밀한 고백을 담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일연의 『삼국유사』,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셰익스피어의 『헴릿』,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 세르반테스의 『돈끼호테』, 노신의 『아Q정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정 교수가 평생을 읽고 또 읽은 문학 작품들이다. (190)
# 삶과 학문은 함께 길을 가는 동반자
정 교수는 엘리아데의 저서 『종교양태론』(Pattern in Comparative Religion)를 통해 “각각의 종교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종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구나”라는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90-191)
왜 공부하는지, 무엇을 고민하는지, 무엇을 터득해야 하는지, 이 과정에서 뭔가 얽혀있는 것은 아닌지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삶의 자리에서 인문학이 함께 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인문학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인문학과 삶을 유리시킨다. 정 교수는 “인문학은 기반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 가는, 삶의 과정에서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고매한 정치학자, 경제학자, 종교학자의 입이 아니라 삶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그렇게 읽혀진 것들이 결국 정치학이며, 경제학이고, 종교학이라는 것이다. (191)
# 겸손함으로 평생 학문의 길을 걸은 사람
정 교수는 “종교학뿐 아니라 학문하는 사람들이 그 분야에 대해 성찰하지 못하면서도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학문하는 자세를 다했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일갈한다. 학문하는 사람이 가져야할 낮은 자세를 그는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192)
호스피스 봉사 현장에서 정 교수는 단지 죽음이라는 현상을 학문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끝자락에 선 사람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보듬고 있는 것이리라...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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