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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근 [金振瑾, 1867~1940] 장로교 목사 김진근 [金振瑾, 1867~1940]장로교 목사 【1867년】평북 구성군 신시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제3회).목사안수를 받았다. 【1914년】강계읍교회에 부임하였다.장로교총회의 결정으로 서간도 지방에 최초의 간도선교사로 파송되었다.집안(輯安)ㆍ통화(通化)ㆍ회인(懷仁)ㆍ흥경(興京)ㆍ유하(柳河)ㆍ해룡(海龍)ㆍ임강(臨江) 등지에 교회와 학교를 여러 개 설립하여 시무하면서 만주 전도의 초석을 놓았다.이후 귀국하여 강계ㆍ용천ㆍ곽산 등지에서 교역하였다. 【1919년】곽산교회에 부임하였다.3ㆍ1운동 당시에는 동지인 김태풍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1920년】평양에서 2년의 옥고를 치렀다.그후 산서노회ㆍ의산노회ㆍ평북노회 노회장을 역임하였다. 【1924년】차련관교회에 부임.. 2024. 9. 2.
제4장. “1959년 한국장로교회 분열 : 통합ㆍ합동의 역사 해석의 차이” - 정병준 제4장. “1959년 한국장로교회 분열 : 통합ㆍ합동의 역사 해석의 차이”정병준, 『한국교회 역사 속 에큐메니컬 운동』, 115-139쪽 중에서 I. 머리말 분열된 장로교회들은 자기 교단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교단 옹호적인 역사 서술을 시도했다. 한국장로교회 분열에 대한 연구들이 상당히 진행되었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객관적이지 못했다.첫째, 한국장로교회 분열에 대한 초기 역사는 주로 분열 당사자들의 기록과 기억에 근거했기 때문에 교단별로 같은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이 고착화되었다. 둘째, 분열 당사자들은 각 교단의 지도자였기 때문에 그 후배들이 사건 상에서 그들의 약점을 지적하기 어려웠다. 셋째, 교회 분열 사건을 다룰 때 실증적 사실보다 교권의 이익과 신학적 가치 평가에 우선 순위를 두면서 객.. 2024. 9. 2.
이태항 [李泰恒 ?~?] 장로교 목사 이태항 [李泰恒 ?~?]장로교 목사 이태항 목사에 대해서 『기독교대백과사전』에는 기록이 없다.그러나 『장로회신학대학교 100년사』에서는 1910년 제3기 졸업생 명단에 수록되어 있다.[김인수, 『장로회신학대학교 100년사』, 장로회신학대학교, 2002, 941쪽] 이태항 목사에 대해서는 최초의 강도사가 되었다는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1910년 제4회 노회에서 평남대리회 소속 김종섭, 김영준, 한병직, 김여현, 강유훈, 이태항 등 6명과 평북대리회 소속 김건주, 한득룡, 문진훤, 송문정, 김진근 등 5명, 그리고 경상대리회 소속 심취명과 평남대리회 소속 채정민을 강도사로 허락했다. 이것이 한국장로교회 내에서 최초로 강도사가 등장한 사례다.”☞ 김일환, “예장 통합교단의 1971년 헌법 개정과 특징”, .. 2024. 9. 1.
권원호 [權元浩, 1904~1944] 감리교 전도사, 순교자 권원호 [權元浩, 1904~1944]감리교 전도사, 순교자 【1904년】8월 5일(음력), 평남 중화(中和)군 중화면 신우리에서 과수원을 경영하는 권오방(중화읍교회 장로)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고향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으며 강원도 고성으로 이주하여 상업에 종사하던 중 기독교를 믿기 시작하여 교역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1923년】2월 7일(음력), 20세의 젊은이로 성장한 권원호는 부모의 주선으로 윤치호의 장녀 순덕양과 결혼하였다. 【1929년】권원호는 황해도 신계군 사지면 막대리로 이주하였다. 그곳에서 주은동교회 집사로 봉사하는 한편 밤에는 야학을 설립하여 젊은이들에게 애국심을 길러주었다. 【1931년】강원도 고성으로 이주하였다. 고성감리교회(이진구 목사) 주일학교.. 2024. 9. 1.
김경종 [金庚鍾, 1894~1950] 장로교 목사, 납북 김경종 [金庚鍾, 1894~1950]장로교 목사, 납북 【1894년】함남 홍원군 홍원읍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3ㆍ1운동으로 옥고를 치루었다. 【1928년】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였다.첫 목회지는 함남 혜산군 혜산읍 혜산리장로교회로 1932년까지 봉직하였다. 혜산교회는 1916년에 설립, 당시 갑산군의 김택서의 전도로 이인규의 사가에서 첫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때로부터 수년간 신마리아가 시무하였다. 신마리아는 기독교의 여성교육자요 평신도 지도자인 신의경의모친이요, 한국 최초의 의학박사로 의사요, 전도자요, 사회사업가인 몸으로 지금의 정신여고의 전신인 연동여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 종사하며 여성교육의 일환으로 여자성경반 주일학교, 사경회연합전도회 등 운영에도 전력을 다하며 연동장로교회의 한국 최초의 .. 2024. 9. 1.
마펫 [Moffett, Samuel Auslin, 1864-1939] 마포삼열(馬布三悅) 미국북장로회 선교사, 목사 마펫 [Moffett, Samuel Auslin, 1864-1939]마펫 Moffett, Samuel Auslin 마포삼열(馬布三悅, 1864.1.25.-1939.10.24.) 미국북장로회 선교사, 목사 한국선교사 마펫의 선교적 공헌은 서북지역의 선교개척자로서, 특히 평양을 한국의 예루살렘으로 변화시킨 장본인이 되었다. 특히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설립, 한국장로교회의 초석을 놓았고 숭실학교를 육성, 기독교 교육과 문화발전에 공로자가 되었다. [한국 기독교 인물 100년, 175쪽] [1864년 1월 25일 : 출생과 가정환경] 1964년 1월 25일 : 미국 인디애나주 매디슨(Madison)에서 포목 사업을 하던 새뮤얼 슈만 마펫(Samuel Shuman Moffett, 1823-1892)과 마리아 맥키(M.. 2024. 9. 1.
오기선 [吳基善, 1877~1946] 감리교 목사, 독립운동가, 청년운동가 오기선 [吳基善, 1877~1946]감리교 목사, 독립운동가, 청년운동가 【1877년】4월 21일, 평남 강서군 함종읍에서 출생하였다. 【1893년】관비생이 되어 평양에서 구학문과 신학문을 익혔다. 【1896년】20세 때 일단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이 무렵 유명한 여전도인 전삼덕(全三德) 부인의 전도를 받아 감리교인이 되었다.함종교회에 출석하며 함종에 사립소학교를 설립, 직접 교사로 활약하였다. 【1908년】선교사 노블(W. A. Noble)에 의해 함종교회 전도사로 정식 파송받았다. 【1909년】미감리회 조선연회에 입회하였다.감리교 협성신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였다(제1회). 당시 교장은 하디(Robert A. Hardie, M.D) 박사였다.집사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해.. 2024. 9. 1.
저다인 [Gerdine, Joseph Lumpkik, 1870~1950] 전약슬(全約瑟)ㆍ전요섭(全堯燮), 미국남감리회 선교사 저다인 [Gerdine, Joseph Lumpkik, 1870~1950]전약슬(全約瑟)ㆍ전요섭(全堯燮), 미국남감리회 선교사 【1870년】7월 13일, 미국 앨라배마주 픽켄스카운티(Pickens County)에서 조셉 헨리 저다인(Joseph Henry Lumpkin Gerdine, 1841~1921)과 레베카 머라(Rebecca Cureton Murrah, 1845~1941) 사이에서 출생하였다.외삼촌인 윌리엄 머라(William Belton Murrah)는 미국 남감리회 감독을 역임했으며 1911년부터 1913년까지 매년 한국을 방문하였다.가족이 미시시피주 웨스트포인트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성장하며 중ㆍ고등학교를 다녔다. 【1892년】조지아대학교(University of Georgia)와 메이컨(Mac.. 2024. 9. 1.
제3장.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갈등과 분립 연구”(1945-1955) - 정병준 제3장.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갈등과 분립 연구”(1945-1955)정병준, 『한국교회 역사 속 에큐메니컬 운동』, 79-113쪽 중에서 I. 머리말 조선신학교와 장로회신학교의 갈등과 분열 과정은 해방 이전 평양신학교 선교사들의 신학교육 주도권과 획일성, 서북 장로교회의 패권과 지역갈등, 일제 황민화 정책에 대한 협력 문제, 박형룡과 김재준으로 대표되는 한국인 지도자들 사이의 신학갈등과 감정 문제, 해방 이후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월남 기독교인의 증가, 조선신학교 지지자들과 장로회신학교 지지자들 사이의 교권투쟁, 선교사들의 개입과 영향력 확대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제들로 얽혀있다. 또한 북장로회, 남장로회, 호주장로회, 캐나다선교회 사이에도 이 문제에 대한 견해가 다양했고, 한국인 지도자들 사이.. 2024. 8.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