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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현(2006). 라가츠의 하나님 나라와 공동체 혁명. 신학연구. 48. 287-308.
I. 들어가는 말
- 라가츠(1868-1945)는 교회의 세속화와 세상의 무신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전력투구했던 종교사회주의자였다. (287)
- 라가츠에 의하면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아버지됨 안에서 인간의 자녀됨과 형제됨이 완성된 어떤 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세속화된 교회와 불의한 사회제도를 개혁하여 이러한 하나님 나라에 상응한 이상 사회를 건설하기를 원했다. (287)
- 라가츠는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의 원리로서 “종교적 무정부주의”와 그 정치경제적 형태로써 “연방주의”를 주장한다. 종교적 무정부주의는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 관계를 의미하며 하나님의 자녀됨과 연관되어 있고, 연방주의는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 관계의 정치경제적 적용으로서 인간의 형제됨과 관계되어 있다. 따라서 그것은 서로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의 양극성을 구성하는 하나님의 자녀됨(복음의 개인주의)과 인간의 형제됨(복음의 사회주의)의 유기체적 결합이다. (288)
II. 종교적 무정부주의
- 종교적 무정부주의 혹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의 무정부주의”는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정을 의미한다. 그것은 교회주의, 성직주의, 신학주의와 교리주의 그리고 성서주의에 방해 받지 않고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직접적으로 관계하며 하나님의 법이 직접적으로 통치하는 상태이다. (288-289)
- 이러한 종교적 무정부주의는 마티우, 바쿠닌과 프루동의 정치적 무정부주의와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헤르만 쿠터의 『직접적인 것 : 인류의 문제』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것은 라가츠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공산주의적 마을 공동체와 1903년에 하나님 체험을 통해서 얻은 하나님 인식과 성서에서 재발견한 하나님 나라에 기초한다. (289)
- 라가츠와 사사시대 (289)
1. 신학과 교리로부터 해방
-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신학자로부터 인간이 비로소 인간이 된다. (290)
- 1) 신학은 학문적 작업을 통해서 살아 계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마비시켜 생명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2) 신학과 신학자는 하나님과 복음의 진리를 독점하므로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분리시킨다. 즉 종교적 분열과 사회적 차별을 일으킨다. 신학은 종교적 이론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인 교제를 공개하려고 한다. 그것은 종교적 소유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독점”이다... 3) 신학의 포로와 신학자의 전유물이 된 살아 계신 하나님과 복음의 진리를 평신도에게 돌려주는 일이다... 하나님 나라는 신학적 토론이 아니라 “세상 한가운데서 세상적인 삶의 갈등과 소요 속에서 하나님의 용사와 동역자의 실제적 투쟁을 통해서” 도래한다. (290-292)
- 신학이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파괴하며 인간과 인간을 종교적으로 분리하기 때문에 라가츠는 “신학과 신학자로부터 떠나라”고 요구하며 더 나아가 신학의 폐지를 주장한다. “신학이 이론적으로 그리스도교를 변질시키며 복잡한 일, 불확실, 강요, 위선, 교만과 기만이 된다면 우리는 신학을 폐지해야만 한다.” “우리는 신학을 폐지하기 위하여 신학을 공부한다.” (292-293)
- 신학의 비전문화... 평신도의 권리는 평신도 신학이나 평신도 교회의 설립이 아니라 신학의 해방을 통해서 평신도의 해방이 이루어질 때 확보될 수 있다. 신학과 교리로부터의 해방은 신학자의 전유물이 되어 신학과 교리의 울타리에 갇힌 하나님과 그의 사역을 해방시키는 일이다. (293)
2. 권력화된 성직 계급의 타파
- 라가츠에 의하면 성직 계급은 종교적 무정부주의의 종교적인 변질 형태이다. 신학이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파괴하는 이론적 작업이라면 성직 계급은 종교와 권력의 잘못된 결합에서 생긴 세속화된 종교적 권력이다. (293)
- “권력으로서의 종교와 종교로서의 권력은 성직 계급을 생산하며 형성한다. 왜냐하면 그것의 본질이 바로 종교가 권력이 되고 권력이 종교가 되는데 있기 때문이다.” (293)
- 이러한 종교와 권력의 결합은 하나님의 평화를 파괴하며 전쟁 이데올로기를 합리화하는 전쟁신학, 하나님의 백성으로 존재하기를 거부하는 잘못된 신정정치에 근거한 종교적 민족주의, 물질을 신격화하고 하나님을 물질화하는 제국주의를 만들어 낸다. (294)
- 성직 계급은 성직자가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권력을 추구하거나 그런 권력을 소유할 때 나타난다. 그들은 정치 권력의 충실한 대리자가 되거나 종교적 권력의 사악한 소유자가 된다. 그리고 종교적 소유에서 발생하는 교만, 위선, 불신앙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성직자와 평신도를 계급적으로 지배하며 하나님의 아버지됨 안에서 인간의 자녀됨과 형제됨을 파괴한다. 여기서 라가츠는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던 사사 시대를 언급한다. (294)
- 성직 계급은 세속화된 종교의 산물이다... 성직 계급은 하나님의 정의를 실천하는 충실한 종이 아니라 불의한 세상을 보호하는 사악한 종이 된다. (294)
- 라가츠는 성직 계급과 성직자를 구별한다. 그의 성직 계급에 대한 투쟁은 일반 성직자가 아니라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권력을 추구하며 그 권력을 소유한 계급화된 성직자에 대한 신랄할 비판이다. 사람들이 종교를 전문화하거나 권력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러므로 라가츠는 성직주의를 거절하며 만인 제사장직을 수용한다... “종교적 민주주의” (294-295)
- 성직 계급은 본래 종교와 권력의 결합을 통해서 발생했기 때문에 오직 그 결합이 폐지될 때에 극복될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권력이 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개입과 돌파가 일어날 때 가능하다. “성직 계급은 종교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 곧 참된 신정정치가 나타나는 곳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다. 성직자가 아니라 순교자가 하나님을 증거한다.” 성직 계급은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성이 회복되고 하나님 자신이 그의 백성들을 직접 통치할 때 완전히 폐지될 수 있다. (295)
3. 신격화된 절대 국가의 폐지
- 절대 국가는 종교적 무정부주의의 정치적인 변질 형태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월권”과 “하나님으로부터 타락의 열매”이다. 그것은 다윗 시대에 시작되어서 솔로몬 시대에 전제 정치를 통해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종교로부터 정치로,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국가의 통치로, 자유로부터 노예 상태로의 세속화 과정이었다. 라가츠에 의하면 솔로몬의 성전 건축은 왕좌와 제단, 곧 왕권과 종교권의 야합이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타락을 의미한다.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한 국가는 신격화되었다... 신격화된 국가는 “노예화착취와 전쟁의 힘”이 되었다. (296)
- 신격화된 국가는 신학과 성직계급처럼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인 관계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어 하나님의 법과 직접적인 통치를 파괴한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직접성의 폐지이며 살아 계신 하나님 안에서 향유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래서 라가츠는 신격화된 국가의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것은 예언자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전통에 속한다. 라가츠에 의하면 모든 후기 예언자들의 사회적 선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법과 사랑 안에서 자유롭게 결합되어 있는 민족공동체 또는 민족적 가족공동체라는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그들의 정치적 활동은 궁극적으로 정치와 국가의 페지를 목표로 했다. “정치는 하나님에 의해서 폐지되었다. 하나님이 지배하는 곳에서 국가는 해체된다.” 그것이 예언자들의 표지였다. (296)
- 라가츠는 이러한 정치와 국가에 대한 예수의 입장을 “예수의 무정부주의”라고 정의한다. 예수는 권력화된 교회와 종교의 종말, 신격화된 국가와 정치의 종말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어떤 국가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민족의 폐지를 선포했다. 그는 이러한 정치적이며 종교적인 태도 때문에 종교화된 국가와 정치 권력화된 종교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다. (297)
- 라가츠는 계급투쟁을 통해서 계급모순이 폐지되면 국가가 스스로 해체된다고 주장하는 칼 마르크스와는 달리 살아 계신 하나님과 그의 나라의 직접성, 곧 종교적 무정부주의를 통해서 신격화된 국가가 폐지된다고 강조한다. (297)
- “국가에 대립하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적극적인 방법이 있다. 국가와 법률은 자유와 사랑이 지배하는 모든 곳에서 폐지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자유와 사랑이 지배하는 곳에서 시저를 대신한다.” (297)
- 그러나 라가츠는 쯔빙글리, 칼빈, 크롬웰이 주장하는 평민적 신정정치와 기독교적 국가를 지향하는 정치적 신정정치를 거절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경외와 오직 하나님에게만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좋은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를 세상의 정치적 수단 즉 권력과 폭력을 통해서 건설하려는 정치적 유혹이기 때문이다. (297)
- 라가츠에 의하면 기독교적 국가와 정치는 기독교적 군대와 강제 수용서처럼 그 자체가 모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는 오직 그 자신의 수단 곧 권력이 아니라 영을 통해서, 강요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 율법이 아니라 자유를 통해서, 명령이 아니라 희생을 통해서 건설되기” 때문이다. 라가츠는 교회와 종교처럼 국가와 법률도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곳에서 폐지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298)
III. 연방주의
- 라가츠는 신격화된 국가의 폐지를 주장한 후 최상의 인간적 삶을 위한 새로운 공동체의 형태를 제시한다. “국가는 폭력의 국가에서 법치국가로, 법치국가에서 사회적 국가로, 사회적 국가에서 자유롭게 형제적인 인간 사회로 변화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무한한 자유와 연대적인 형제애가 완전히 실현된 사회, 곧 하나님의 아버지됨 안에서 인간의 자녀됨과 형제됨이 완성된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를 의미한다. (298)
- “하나님 나라는 오직 자유와 사랑으로만 건설될 수 있다. 그것은 자유로운 조합이다. 그것은 자유로운 조합이다. 그것은 통치가 아니라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일반적 의미에서 어떤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국가, 곧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의 자유롭게 형제적인 가족이다.” (298)
- 신격화된 국가를 대신하는 연방주의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완전히 상응하는 사회적 민주주의적 조합주의적 공동체이다. (299)
-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자유를 의미하는 정치적-종교적 민주주의, 자유 안에서 공동체를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사회주의, 공동체의 완성된 상태인 그리스도의 공산주의 (299)
1. 정치적-종교적 민주주의
- 라가츠의 정치적-종교적 민주주의에 대한 사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직접성과 하나님의 법에서 나오는 인간의 무한한 가치와 존엄성에 근거한다. “법은 민주주의의 토대일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이다. 또한 하나님의 법이 있는 곳에 민주주의가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정치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회공동체의 혁명이다. (299)
- 라가츠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됨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초석이며 인간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원리이다. (299)
- 종교적 민주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전제로서 종교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교회공동체의 혁명이다. 그것은 새로운 교회공동체의 형성을 지향한다. (300)
- 정치적-종교적 민주주의는 중세기에 세속화된 신정정치에 대항한 천년왕국운동, 프란체스코와 후스교도들의 운동에서 나타났다. 루터는 만인 제사장설과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통하여 종교적 민주주의를 시도했지만 성직계급을 배제한 신정정치를 거부하고 영적 나라와 세상 나라를 분리하는 두 왕국론을 주장함으로서 실패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혁교회의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려는 신정정치와 그리스도와 민중을 결합하려는 시도(칼빈의 제네바 신정정치), 토마스 뮌처와 재세례파의 급진적 종교개혁운동에서 다시 계승되었다. 이러한 정치적-종교적 민주주의는 공동체 혁명의 기본 원리로서 그리스도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서 구체적인 형태로 실현된다. (300-301)
2. 그리스도의 사회주의
- 정치적-종교적 민주주의에 근거한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사회주의이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유래하고 그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는 “하나님 나라의 사회주의”, “자발적 사회주의”와 “직접적 사회주의”를 의미한다. 정치적-종교적 민주주의의 원리가 하나님의 자녀됨, 곧 인간의 무한한 가치와 자유라면, 그리스도의 사회주의의 원리는 하나님의 아버지됨 안에서 인간의 형제됨, 곧 인간의 사회적 연대성이다... 그리스도의 사회주의는 하나님의 아버지됨 안에서 인간의 형제됨이 사회적 형태이다. 그것은 사회혁명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실현된다. 사회혁명은 원칙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발생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세계 변화의 전망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301)
- 그리스도의 사회주의는 사회혁명을 통해서 불의한 신적 세계질서를 파괴하며 사회적 분열을 극복한다. 사회혁명은 종교사회주의 운동의 투쟁의 방법을 나타내는 ‘종교적인 것에서 사회적인 것으로’의 방향에 상응하게 내적인 변화에서 외적인 변화로, 곧 인간의 변화에서 사회의 변화로 일어난다. 변화된 인간이 불의한 사회를 개혁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 순서이다. (302)
3. 그리스도의 공산주의
- 공동체의 혁명으로서 연방주의의 마지막 형태는 물질 공동체를 의미하는 “그리스도의 공산주의” 혹은 “사랑의 공산주의”이다. 그리스도의 사회주의가 인간의 형제됨에 근거한 사회적 연대성을 의미한다면 그리스도의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이 사회적 연대성이 완성된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에 근거한다. (303)
- 그리스도의 공산주의는 정치적 형태의 세속적인 공산주의의 등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서 실현된다. 그것은 “그리스도 사역의 원초적 공동체 형태이며 그리스도의 영에 알맞은 공동체의 형태”이다. (303)
- 그리스도의 공산주의... 1) 모세 율법에 나타난 “절대 소유의 폐지”이다... 2) 교부들의 고백과 자연법 사상에 나타난 것처럼 하나님의 절대 질서이다... 3) 인류가 하나님의 한 가족이라는 인식에서 형제적 도움을 의미하는 연대성이다... 그리스도의 공산주의는 하나님의 질서로서 절대소유의 폐지와 사회적 연대성이 완성된 공동체를 의미한다. (303-304)
- 그리스도의 공산주의는 유토피아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로서 예수를 중심으로 공산주의적으로 살았던 공동체(눅 8:1-3)와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을 통해서 태동된 초기 교회공동체에서 구체화되었다. (304)
- 그리스도의 공산주의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상대적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사유재산을 옹호함으로써 무가치하게 되었으며 민족주의, 전제주의, 국가주의, 제국주의, 특히 자본주의(맘몬주의)의 등장으로 탈진죄었지만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305)
IV. 나가는 말
- 공동체의 혁명을 의미하는 종교적 무정부주의와 연방주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종교적 인간 해방을 지향한다. 그 궁극적 목표는 하나님 나라에 상응한 이상 사회로서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의 역사적 실현이다. (305)
- 라가츠는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 관계를 파괴하는 신학과 교리로부터의 해방, 성직계급의 타파, 절대국가의 폐지를 주장하며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의 정치 경제적 원리와 형태로서 정치적-종교적 민주주의, 그리스도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서술한다. 그것의 역사적 원형은 초기 교회 공동체이다.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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