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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선구적 3ㆍ1운동” - 김승태(2019) 김승태 (2019). 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선구적 3 1운동. 기독교사상, 722, 7-19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은 경기도 한성부(오늘날 서울)와 고양, 평안북도 의주와 선천, 평안남도 평양, 진남포, 안주, 함경남도 원산, 그리고 황해도 해주 모두 9곳이다. (7) 이 지역 최초의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는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주동하였고, 교회의 조직과 인맥이 동원되었으며, 교회가 인근 지역 3ㆍ1운동 확산의 주요 통로가 되었다. (7) 의주, 선천에서의 3ㆍ1운동 의주에서의 3ㆍ1운동... 유여대 목사가 선천에서 열린 평북노회에 참석한 길에 그곳 양전백 목사의 집에서 이승훈 장로를 만나 독립운동 계획을 듣고 김병조 목사와 함께 민족대표로 참여하기로 한 1919년 2월 1..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12장 : 대 박해와 최후의 승리 4세기 초에 마지막이자 가장 심한 박해가 발생했다. 디오클레티안 황제 (179) 디오클레티안의 제국 분할 통치 (179) 디오클레티안의 아내 프리스카와 딸 발레리아는 기독교인이었다. (181) 병역에 관한 기독교인이 전체적인 의견을 모으지 못한 상태 – 디오클레티안을 부추기는 갈레리우스 (181) 303년 갈레리우스는 디오클레티안을 설득하여 기독교인들에게 불리한 새 칙령을 공표하게 했다. 이때에도 그의 목표는 기독교인들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고위 관직에서 축출하려는 데 있었다. (181) 황궁에서의 화재 사건... 디오클레티안은 기독교인들에게 분노를 터뜨려 황실을 섬기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엄명했다. (수상 도로테우스 등 순교) … 기독교인 모두가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야..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11장 : 기독교인의 생활 # 초기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계층 [160] 기독교인들 중 박식한 학자들은 일반적이 아니라 예외적이었다. 오리겐이 『켈수스에 대항하여』라는 저술에서 반박 못함. (160) 처음 3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의 다수가 하류층 출신 (161) 평신도 층을 기반으로 저술들과 전설들이 등장 : 외경에 속한 복음서들과 여러 사도들의 “행전” 및 동정녀 마리아의 “행전” - 베드로행전, 예수가 아브가르 왕에게 보낸 편지, 마리아와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가 주고 받은 서신, 바돌로매 복음 (161) 유명한 변증가들이 기독교 신앙과 제국의 정책들 사이에 근본적 충돌이 없다는 점을 애써 주장하고 있었던 반면, 일부 평범한 신자들은 제국의 목표들과 하나님의 목적 사이에는 서로 피할 수 없는 충돌이 존재한다는 점을 깊이 의식하고 있..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10장 : 3세기의 박해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의 박해 [148]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는 제국 내의 종교적 통일성을 유지할 필요를 느껴 혼합절충정책을 수행하기로 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솔 인빅투스, 즉 정복되지 않는 태양을 예배하도록 명령했다. 이 태양이 지존의 신임을 인정하면 모든 다른 신들을 허용할 생각이었다. (148)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칙령이 발해진 서기 202년은 기독교 박해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148) 『퍼페투아와 펠리시타스의 순교』 (149) 펠리시타스 - “현재 나의 고통은 나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야수들을 대면할 때 또 다른 이가 내 안에 사실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해 고난을 당할 것이므로 그분이 내 대신 고통을 받으실 것이다.” (150) 사투르니누스, 레보카투스, ..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9장 : 교회의 교사들 1세기 말 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교인에게 보내는 서신』 (123) 『디다케』, 혹은 『열두 사도의 교훈서』 : 기독교 생활과 예배에 관한 지침서 (124) 2세기 중엽 로마 감독의 형제가 저술한 『헤르마스의 목자』 : 세례 후에 범한 죄의 용서 (124) 교부들의 저술들은 한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들 중 누구도 기독 교리 전체를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124) 2세기 말 마르시온과 영지주의자들의 도전은 다른 반응을 요구했다. (124) # 리용의 이레네우스 [124] 『사도적 가르침』 : 교인들에게 기독교 교리를 강해 (125) 『소위 지식에 대한 논박』(『이단에 반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 영지주의 반박 (125) 이레네우스의 저술은 2세기 말 교회의 신앙 상태를 보여주는 뛰..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8장 : 신앙의 결정 다양성 (103) # 영지주의 (104) 1945년 이집트의 낙 함마디에서 영지주의 저술들이 발견 - 『도마 복음』, 그리고 보다 후기의 영지주의자 지도자인 발렌티누스의 『진리의 복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단 연구자들은 발렌티누스의 가르침들을 묘사하고 어느 정도 왜곡했다. (105) “영지주의”라는 명칭은 “지식”을 의미하는 헬라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들은 특별하고도 신비로운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진정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구별된 것이었다. 이 지식은 구원에 이르는 비밀의 열쇠였다. (105) 영지주의자들의 최종 목표는 몸 및 우리가 유배되어 있는 곳인 물질세계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 이 해방을 위해 메신저가 필요하고, 기독교적 영지주의에서 ..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7장 : 신앙의 수호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생활에 관한 헛소문과 오해에 대해 해명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 변증가들 (87-88) # 더러운 소문과 고상한 비판 (8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 켈수스가 『진정한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박문을 저술했다. (89) 코넬리우스 프론토 (90) 교양 있는 지식층 이교도들이 기독교를 미워한 것은 순전한 지적 문제가 아니라 계층 간의 편견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 (90) 켈수스는 예수님이 마리아와 로마 병사 사이에 태어난 사생이라고 주장했다. (91) 부활 교리에 대한 비판 (92) # 주요 변증가들 (92) 현존하는 작품 중 가장 오래된 변증서는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인 듯하다. (92-93) 순교자 저스틴, 저스틴의 제자 타티안, 아테나고라스,..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6장 : 2세기의 박해 2세기 박해의 기록 - 『순교자 행전』 (71)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가 형장으로 이송되어가면서 남긴 일곱 개의 서신 (72) # 플리니와 트라얀이 주고 받은 서신 (72) 플리니가 당면한 문제 – 기독교인들에게 뚜렷한 범죄 사실이 있을 때에만 처벌해야 하는지, 아니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범죄를 구성하는 지의 여부 (72) 황제의 대답 – 고발된 경우에 뉘우치지 않으면 처벌하라 (73-74) 터툴리안의 비판 (74) 2세기, 그리고 3세기 일부에 이르기까지 제국 전역에서 기독교인들을 색출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당국에 소환되었을 때에는 이들을 처벌한다는 것이 제국의 공식적 정책이었다. (75) #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하나님의 사자 (75) 이그나티우스의 일곱 편지 : (76-77) 이그나티우..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5장 : 최초의 국가와의 대결 박해의 이유와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59) # 새로운 유대교 분파 (59) 유대인들을 향한 기독교의 메시지는 그들의 고유한 유대성을 버려야 하다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의 시대가 시작되었으므로 더 나은 유대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 (60) 이방인들을 향해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어진 약속에 참여하라는 것. 이방인들은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없었으므로 신앙을 통해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초대되었다. (60) 로마인들과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당시의 문제가 유대인들 사이의 내분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었다. (61) # 네로 시대의 박해 (63) AD. 64년 6월 18일 로마의 대화재 발생 – 황제는 기독교인들에게 혐의를 씌우기로 작정함. 타키투스의 기록 (64-65) 로마 문화와 사회를 .. 2021.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