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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5장 : 제국의 국경을 넘어 탈굼... 2세기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시리아어 역본이 등장하여 페시타(“단순한”이라는 의미)라고 알려졌는데, 그것은 비슷한 의미를 지닌 벌게이트를 상기시켜 준다. (372) 순교자 저스틴의 제자 타티안... 사복음서를 편집한 『디아테사론』은 시리아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 사회에서 많은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7세기에도 시리아 교회에서 사용되었다. (372) 초기 기독교 시리아 전파... 가장 성공적으로 전파된 것은 에뎃사(현재 터키 동쪽 지방)였다... 압가루스 9세 때에 기독교화, 가장 오래된 기독교 도시국가였다...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 개종했으며 나병환자였던 압가루스 5세가 예수님에게 에뎃사에 와서 자기의 병을 치료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전설... 편지와 함께 다대오를 보냄... 이 전설..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4장 : 힙포의 어거스틴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351) # 신앙으로의 길고 험한 여정 [352] AD 354년 북아프리카의 작은 마을 타가스테에서 출생...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 (352) 한 여자와 동거하며 아들을 낳았다(아데오다투스 - “하나님의 선물”)... 수사학 공부. 수사학의 목적은 설득력이 있고 명쾌하게 말하고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진리는 이들의 관심 밖이었다... 어거스틴은 키케로의 글을 읽으면서 뛰어난 언변과 문제만으로는 미흡하다는 확신에 도달했다. 그는 인간은 진리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353) 진리 추구를 위해 마니교를 찾았다... 빛과 어둠... (353) 마니교 교사 – 파우스투스 (356) 밀란에서 심플리키아누스(Simplici..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3장 : 제롬(Jerome) 그는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하여 끊임없이 벌인 내면의 투쟁으로 유명했다... 그의 성스러움은 겸손하고 온유하고 부드럽다기보다는 거만하고 격정적이고 자조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항상 인간 이상의 차원에 도달하고자 노력했으므로 게으른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나 자기를 비평하는 자들을 참고 보지 못했다. (341-342) 제롬의 비판의 대상 : 존 크리소스톰, 밀란의 암브로스, 가이사랴의 바실, 힙포의 어거스틴... 그는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을 가리켜 “다리가 둘 달린 멍청한 당나귀들”이라고 혹평했다. (342) 기독교 미술사에서는 그를 종종 해골을 응시하는 심술궂는 금욕고행자로 묘사해왔다. (342) 중병에 걸렸을 때 꿈 속의 ‘최후이 심판 자리’에서 키케로주의자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성경 및 기독교..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2장 : 존 크리소스톰 콘스탄티노플의 존은 죽은 지 100년 후 후세인들에게 크리소스톰, 즉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다. 위대한 설교가... (329) 존 크리소스톰에게 있어 강단은 전 생애의 언어적 표현이요 악의 세력에 대항한 전장이었으며, 결국 그를 유배와 죽음의 길로 끌고 간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장소였다. (329) #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330] 수도사가 되기 전 안디옥에서 유명한 수사학자 리바니우스에게 사사했다. 어떤 사람이 누가 그의 뒤를 계승하겠냐고 물었을 때, “존이지,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이미 그를 차지했단 말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함. (330) 안디옥의 감독 멜레티우스에게서 세례를 받고 수도생활 시작... 6년의 은둔 생활 후에 안디옥으로 돌아옴. (331)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직이 ..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1장 : 밀란의 암브로스 # 예기치 못한 선출 [319] 373년 밀란의 아리우스파 감독(아욱센티우스)의 죽음 – 차기 감독을 놓고 신경전... 혼란을 막기 위해 당시 밀란의 총독 암브로스가 선거현장에 참석... 군중들에 의해 감독으로 선출됨... 8일 동안 성직자가 되기 전에 밟을 절차를 마치고 373년 12월 1일 밀란의 감독에 임명됨 (319-321) 사제 심플리키아누스의 도움으로 신학을 공부. (321) 동방교회의 신학을 서방교회에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헬라어에 능함. (321)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작품, 특히 바실의 논문 『성령에 관하여』를 대중화함으로써 서방에서 삼위일체 신학의 발달에 기여했다. (321) 목회적 용어로 성육신의 중요성을 강조함 : “여러분이 완전히 성장하여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게 하려고 그분이..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0장 : 카파도키아 교부들 가이사랴의 바실(대 바실), 닛사의 그레고리(바실의 동생),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 바실과 닛사의 그레고리의 누나인 마크리나 (305) # 마크리나 [306] 약혼자의 사망 - 독신으로 살며 관상생활을 할 것을 서원함 (306) 바실은 카파도키아 지방의 중심지인 가이사랴와 안디옥과 콘스탄티노플에서 공부했다. 마지마 아테네 유학 시절 나지안주스 감독이 될 그레고리와 “대배교자”라는 칭호를 받게 될 줄리안 왕자와 만남. (306) 공부를 통해 교만해진 바실에게 충고한 마크리나, 세속의 명예를 버렸던 나우크라티우스의 사망으로 충격을 받아 마크리나에게 종교생활의 비밀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함 (307) 마크리나는 집안의 재산을 포기하고 가까운 안데사로 들어가 관상과 금욕의 생활을 하자고 제안하였다. 참된 행복은 ..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19장 :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 “검은 난쟁이” 아타나시우스 (291) # 초기 생애 [291] 헬라인과 로마인들에 의해 거듭 정복된 콥트 족이요 이집트의 하층 계급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92) 제롬은 아타나시우스가 은자 폴에게 겉옷을 준 적이 있다고 기록했다. 아타나시우스는 『성 안토니의 생애』에 자신이 직접 안토니를 방문하여 그의 손발을 씻어준 일이 있다고 기록했다... 아타나시우스가 평생 자기를 지지하고 피신처를 제공한 사막의 수도사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했음은 의심할 바 없다. (292) 수도사들로부터 엄격한 규율을 배우고 지켰는데, 이러한 엄격성 때문에 친구들의 존경을 받았고 일부 적들이 경탄을 자아냈다. (292) 아타나시우스는 주의 사람들과 밀접한 유대를 유지했으며, 아리우스파의 교묘한 이론이나 다른 중요한 교구들의..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18장 : 이교도들의 반동 : 배교자 줄리안 줄리안 : 콘스탄티우스 및 그가 고백한 기독교 신앙을 혐오 (283) 갈루스(중병), 줄리안(6세)로 죽음을 모면... 기독교 교육을 받음... AD 350년 제국의 유일한 통치자가 된 콘스탄티우스는 통치자를 돕거나 제위를 계승할 후사가 없었으므로 갈루스를 불러들였다... 음모를 꾸민다는 소문으로 체포되어 살해됨 (283-284) 줄리안은 아테네에서 철학 연구를 계속함. 가이사랴의 바실을 만났고, 고대 신비종교들에 흥미를 가짐. 고울 지방에서 뛰어난 행정적 수완을 발휘하여 지지를 얻음... 콘스탄티우스는 줄리안의 모반을 우려함... 고울의 병력이 줄리안을 “아우구스투스”로 선포함... 콘스탄티우스와의 전쟁이 불가피했을 때, 콘스탄티누스가 사망하여 줄리안이 제국을 접수함(361년)... 적대자들에 대한 숙..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17장 : 아리우스 논쟁과 니케아 공의회 바울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유대인과 이방인 개종자들의 관계였다. (265) 키프리안이 카르타고의 감독으로 있던 3세기 논쟁의 초점은 배교자들의 복원 문제였다. (265) 콘스탄틴의 회심 이후 신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 권위를 동원할 수 있게 되었다. 제국은 콘스탄틴이 제국을 결속시키는 기반으로 작용하기를 바랐던 교회의 통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65-266) 많은 인사들이 자신의 적들이나 교회를 설득하고 납득시키기보다는 황제를 설득하려 했다. 결국 신학적 논쟁들이 정치적 음모의 침해를 받기 시작했다. (266) 아리우스 논쟁 : 정치적 술수로 점철된 신학적 논쟁 자체가 아니라 이처럼 험난한 상황에서도 교회가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을 위협한 이론들을 배척할 수 있는 힘과 슬기를 유지했.. 2021.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