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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577

“루터와 뮌처” - 김영한(2006) 김영한 (2006). 루터와 뮌처. 서강인문논총, 20, 35-66 I. 머리말 루터는 중세의 기독교 질서를 흔들어 놓은 개혁자, 뮌처는 중세의 봉건질서를 무너뜨리고자 농민봉기를 주도한 혁명가 - (36) 루터 : 성서주의 주장.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개인의 공적과 선행을 부인하고 오로지 신의 은총만을 기대하는 신앙의 객관화 추구 - (36) 뮌처 : 성령주의 강조. 성령을 통한 내적 경험을 중시하는 신앙의 주관화를 중시 - (36) 루터의 두 왕국론(양자의 권위 존중), 뮌처의 천년왕국론(기존의 사회제도와 질서가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 (36-37) 루터는 압제가 반란의 명분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농민반란을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뮌처는 불의와 불평등에 저항하는 것은 신의 뜻이라고 확신하여 농민봉귀.. 2021. 2. 20.
“독일 농민전쟁(1524-1526)에 미친 Martin Luther의 영향” - 장수한(2015) 장수한 (2015). 독일 농민전쟁(1524-1526)에 미친 Martin Luther의 영향. 복음과 실천, 55(1), 135-162 1. 서론 : “초기 시민혁명” 논제의 비판적 계승 독일 농민전쟁에 관한 연구는 종교개혁의 역사를 신학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게 했다 - (135) 농민전쟁 참가자 30만명, 사망자(7만 내지 7만 5천명) - (136) 농민전쟁에 대한 루터의 이중의 영향 - (136) 루터의 “그리스도인의 자유” : 농민전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침 - (136) “강도와 도적과 같은 농민들을 타도하고 무찌르라!”(루터) - (136) 농민전쟁에 대한 평가 빌헬름 침머만의 『독일 대 농민전쟁』(1841년) - (136) 프리드리히 엥겔스 : “독일 민족 최대의 혁명 시도”(농민전쟁) - (.. 2021. 2. 20.
“초기 박형룡 박사(1897-1942)의 신학 형성 과정에 대한 소고” - 이상웅 이상웅 (2012). "초기 박형룡박사(1897-1942)의 신학 형성 과정에 대한 소고". 신학지남, 229-260 본 논문에서는 박형룡 박사의 초기 신학 형성 과정(1897-1942)을 살펴보면서 그 속에 이미 드러나고 있는 네덜란드 개혁주의의 미미한 영향력을 분석해 보려고 하는 목적을 가지고 쓰여졌다. (230) 세 가지 요소를 고려... 1) 그가 정식적으로 신학 수업을 받기 이전에 받은 비신학적인 영향... 특히 유학 경전 학습을 통해서 배운 학문의 자세와 중국 유학의 영향... 2) 신성중학교와 평양 숭실전문에서 만난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의 영향, 즉 그들을 통해서 입은 영미 복음주의의 영향을 규명... 3) 구 프린스턴 신학의 영향과 침례교 신학의 영향... (230) 1. 초기 박형룡 박사.. 2021. 2. 20.
“서울 지역의 기독교 3ㆍ1운동” - 송현강(2018) 송현강 (2018). 서울 지역의 기독교 3 1운동. 기독교사상, 719, 109-119 기독교인들의 민족대표 구성 및 서울 시위 상황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식과 관련된 기독교계 인사들의 참여과정... (109-111) 1) 평안도와 서울 지역을 연결하는 장로교의 흐름... 2월 초 신한청년단에서 파견된 선우혁의 활동... 2월 평북노회(선천) 개최... 이승훈은 선우혁과 만난 직후 서울로 와서 남대문교회의 함태영과 이갑성을 만나 참여 약속을 받았다. 그는 2월 10일 선천으로 가서 평북노회 참석 중인 양전백, 유여대, 김병조, 이명룡 등을 포섭... 그리고 평양으로 가서 남산현교회의 신흥식 목사와 장대현교회의 길선주 목사를 소개받아 그들 역시 함께하기로 약속... 이승훈은 2월 17일 다시 상경한 .. 2021. 2. 20.
“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선구적 3ㆍ1운동” - 김승태(2019) 김승태 (2019). 북한 지역에서 일어난 선구적 3 1운동. 기독교사상, 722, 7-19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가 일어난 곳은 경기도 한성부(오늘날 서울)와 고양, 평안북도 의주와 선천, 평안남도 평양, 진남포, 안주, 함경남도 원산, 그리고 황해도 해주 모두 9곳이다. (7) 이 지역 최초의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는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주동하였고, 교회의 조직과 인맥이 동원되었으며, 교회가 인근 지역 3ㆍ1운동 확산의 주요 통로가 되었다. (7) 의주, 선천에서의 3ㆍ1운동 의주에서의 3ㆍ1운동... 유여대 목사가 선천에서 열린 평북노회에 참석한 길에 그곳 양전백 목사의 집에서 이승훈 장로를 만나 독립운동 계획을 듣고 김병조 목사와 함께 민족대표로 참여하기로 한 1919년 2월 1..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12장 : 대 박해와 최후의 승리 4세기 초에 마지막이자 가장 심한 박해가 발생했다. 디오클레티안 황제 (179) 디오클레티안의 제국 분할 통치 (179) 디오클레티안의 아내 프리스카와 딸 발레리아는 기독교인이었다. (181) 병역에 관한 기독교인이 전체적인 의견을 모으지 못한 상태 – 디오클레티안을 부추기는 갈레리우스 (181) 303년 갈레리우스는 디오클레티안을 설득하여 기독교인들에게 불리한 새 칙령을 공표하게 했다. 이때에도 그의 목표는 기독교인들을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고위 관직에서 축출하려는 데 있었다. (181) 황궁에서의 화재 사건... 디오클레티안은 기독교인들에게 분노를 터뜨려 황실을 섬기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엄명했다. (수상 도로테우스 등 순교) … 기독교인 모두가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야..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11장 : 기독교인의 생활 # 초기 기독교인들의 사회적 계층 [160] 기독교인들 중 박식한 학자들은 일반적이 아니라 예외적이었다. 오리겐이 『켈수스에 대항하여』라는 저술에서 반박 못함. (160) 처음 3세기 동안 기독교인들의 다수가 하류층 출신 (161) 평신도 층을 기반으로 저술들과 전설들이 등장 : 외경에 속한 복음서들과 여러 사도들의 “행전” 및 동정녀 마리아의 “행전” - 베드로행전, 예수가 아브가르 왕에게 보낸 편지, 마리아와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가 주고 받은 서신, 바돌로매 복음 (161) 유명한 변증가들이 기독교 신앙과 제국의 정책들 사이에 근본적 충돌이 없다는 점을 애써 주장하고 있었던 반면, 일부 평범한 신자들은 제국의 목표들과 하나님의 목적 사이에는 서로 피할 수 없는 충돌이 존재한다는 점을 깊이 의식하고 있..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10장 : 3세기의 박해 #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시대의 박해 [148]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는 제국 내의 종교적 통일성을 유지할 필요를 느껴 혼합절충정책을 수행하기로 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솔 인빅투스, 즉 정복되지 않는 태양을 예배하도록 명령했다. 이 태양이 지존의 신임을 인정하면 모든 다른 신들을 허용할 생각이었다. (148)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칙령이 발해진 서기 202년은 기독교 박해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이룬다. (148) 『퍼페투아와 펠리시타스의 순교』 (149) 펠리시타스 - “현재 나의 고통은 나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야수들을 대면할 때 또 다른 이가 내 안에 사실 것이다. 내가 그를 위해 고난을 당할 것이므로 그분이 내 대신 고통을 받으실 것이다.” (150) 사투르니누스, 레보카투스, .. 2021. 2. 20.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9장 : 교회의 교사들 1세기 말 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교인에게 보내는 서신』 (123) 『디다케』, 혹은 『열두 사도의 교훈서』 : 기독교 생활과 예배에 관한 지침서 (124) 2세기 중엽 로마 감독의 형제가 저술한 『헤르마스의 목자』 : 세례 후에 범한 죄의 용서 (124) 교부들의 저술들은 한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들 중 누구도 기독 교리 전체를 해석하려 하지 않았다. (124) 2세기 말 마르시온과 영지주의자들의 도전은 다른 반응을 요구했다. (124) # 리용의 이레네우스 [124] 『사도적 가르침』 : 교인들에게 기독교 교리를 강해 (125) 『소위 지식에 대한 논박』(『이단에 반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 영지주의 반박 (125) 이레네우스의 저술은 2세기 말 교회의 신앙 상태를 보여주는 뛰.. 2021. 2.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