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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577

곤잘레스, 『중세교회사』 제1부 제3장 : 제국의 부활과 계속되는 부패 # 샤를마뉴 대제의 통치 [83] 레오가 샤를마뉴에게 왕관을 씌웠을 때 서방 기독교권 거의 전체가 황제의 통치 아래 있었다. (83) 프리지아족과 색슨족에 대항한 전쟁... 784년 프리지아족이 항복... 1년 후 색슨족도 항복하고 수천 명이 강제로 세례 받았다... 색슨인들은 세례를 받는 것은 곧 조상들의 신들을 배반하는 것이며 이 때문에 신들 또한 자기들을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례를 받은 후에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84) 『롤랑의 노래』 (84) 샤를마뉴는 황제로서 자신이 세속사와 종교 문제에 있어서 백성들을 다스리라는 소명을 받았다고 여겼다. 그는 자격 있는 자들을 감독들로 선별했으나 마치 장군들을 지명하듯이 임명했다. (85) 샤를마뉴는 교육받.. 2021. 2. 23.
곤잘레스, 『중세교회사』 제1부 제2장 : 동방 기독교 서방에서는 라틴어를, 그리고 동방에서는 헬라어를 사용했다는 큰 문화적 차이뿐만 아니라 양자 간의 판이한 정치적 발전 과정 역시 이 두 교회들을 위하여 완전히 다른 상황을 제공했다. (53) 동방에는 황제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신학적 결정을 단행했으므로 더 큰 혼란과 무질서가 야기될 수밖에 없었다... 중세시대 내내 신학 논쟁이 벌어짐... (54) # 칼케돈 공의회에 이르는 기독론 논쟁 [54]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어 있는가 하는 문제 (55)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안디옥 학파는 신성이 불변하며 영원하다는 데 합의.. 양 학파 모두 예수가 신이신 동시에 인간이라는 데 동의했다. 문제는 이 연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55) 알렉산드리아 학파 : 수세기 전에 존재했던.. 2021. 2. 23.
곤잘레스, 『중세교회사』 제1부 제1장 : 새로운 질서 “만약 야만족이 로마 국경을 넘어 침입한 것이...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즉 그리스도의 교회가 훈족과 수에비족, 그리고 반달족과 부르군트족 등 많은 종족들로 채워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이러한 과정이 우리의 멸망을 통해 이루어졌다 할지라도 사랑의 자비를 찬양할지어다. - 파울루스 오로시우스 (15) 서로마제국이 멸망하면서 많은 독립 왕국들이 건설... 수도원주의와 교황제도에 새로운 기능과 권력을 부여했다. (15) # 게르만족 왕국들 [15] “야만족들”의 대부분은 실상 로마제국 안에 정착하여 멀리서 앙모해 왔던 문명의 혜택을 누리기 원했다. (15) 407년 라인 강을 건넌 반달족은 프랑스와 스페인 일대를 방랑하다가 429년 지브롤터 해역을 건넜고 439년에 카르타고를 함락시켰다... 그 후 다시.. 2021. 2. 23.
후스토 L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서문 / 4개정증보판 서문 / 6 제1장 : 서론 / 13 제1부 : 초대교회 제2장 : 때가 차매 / 23팔레스타인의 유대교 / 24디아스포라 유대교 29그레코-로마 세계 / 32 제3장 : 예루살렘 교회 / 39통일성과 다양성 / 39종교생활 / 42유대인 교회의 쇠퇴 / 44 제4장 : 이방 선교 / 47선교의 규모 / 47바울의 사역 / 50사도들 : 사실과 전설 / 53 제5장 : 최초의 국가와의 대결 / 59새로운 유대교 분파 / 59네로 시대의 박해 / 63도미티안 시대의 박해 / 67 제6장 : 2세기의 박해 / 71플리니와 트라얀 사이의 서신 / 72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하나님의 사자 / 75폴리갑의 순교 / 79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의 박해 / 822세기 말 / 85 제7장 : 신..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6장 : 한 시대의 종말 서로마제국은 멸망했지만, 제국의 정복자들은 대부분 결국 제국의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그후 1세기 동안 유럽의 여러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고대 카이사르의 참 후계자라고 주장했다. (382) 교회는 문명과 질서의 수호자가 되었다. 교회는 다양한 방법으로 제국의 멸망에 따른 힘의 공백을 채웠다. 수세기 후 서방에 다시 제국이 성립된 것도 교회의 손에 의해서였다. 교황이 황제에게 제관을 씌워주었다. (383) 침략자들 중 다수가 아리우스주의자... 후에 니케아 신앙을 받아들임. (383)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5장 : 제국의 국경을 넘어 탈굼... 2세기에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의 시리아어 역본이 등장하여 페시타(“단순한”이라는 의미)라고 알려졌는데, 그것은 비슷한 의미를 지닌 벌게이트를 상기시켜 준다. (372) 순교자 저스틴의 제자 타티안... 사복음서를 편집한 『디아테사론』은 시리아어를 사용하는 기독교인들 사회에서 많은 논쟁의 주제가 되었다... 7세기에도 시리아 교회에서 사용되었다. (372) 초기 기독교 시리아 전파... 가장 성공적으로 전파된 것은 에뎃사(현재 터키 동쪽 지방)였다... 압가루스 9세 때에 기독교화, 가장 오래된 기독교 도시국가였다... 예수님이 살아있을 때 개종했으며 나병환자였던 압가루스 5세가 예수님에게 에뎃사에 와서 자기의 병을 치료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전설... 편지와 함께 다대오를 보냄... 이 전설..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4장 : 힙포의 어거스틴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351) # 신앙으로의 길고 험한 여정 [352] AD 354년 북아프리카의 작은 마을 타가스테에서 출생...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 (352) 한 여자와 동거하며 아들을 낳았다(아데오다투스 - “하나님의 선물”)... 수사학 공부. 수사학의 목적은 설득력이 있고 명쾌하게 말하고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진리는 이들의 관심 밖이었다... 어거스틴은 키케로의 글을 읽으면서 뛰어난 언변과 문제만으로는 미흡하다는 확신에 도달했다. 그는 인간은 진리도 추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353) 진리 추구를 위해 마니교를 찾았다... 빛과 어둠... (353) 마니교 교사 – 파우스투스 (356) 밀란에서 심플리키아누스(Simplici..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3장 : 제롬(Jerome) 그는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하여 끊임없이 벌인 내면의 투쟁으로 유명했다... 그의 성스러움은 겸손하고 온유하고 부드럽다기보다는 거만하고 격정적이고 자조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항상 인간 이상의 차원에 도달하고자 노력했으므로 게으른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나 자기를 비평하는 자들을 참고 보지 못했다. (341-342) 제롬의 비판의 대상 : 존 크리소스톰, 밀란의 암브로스, 가이사랴의 바실, 힙포의 어거스틴... 그는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을 가리켜 “다리가 둘 달린 멍청한 당나귀들”이라고 혹평했다. (342) 기독교 미술사에서는 그를 종종 해골을 응시하는 심술궂는 금욕고행자로 묘사해왔다. (342) 중병에 걸렸을 때 꿈 속의 ‘최후이 심판 자리’에서 키케로주의자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성경 및 기독교.. 2021. 2. 21.
곤잘레스, 『초대교회사』 제2부 제22장 : 존 크리소스톰 콘스탄티노플의 존은 죽은 지 100년 후 후세인들에게 크리소스톰, 즉 “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다. 위대한 설교가... (329) 존 크리소스톰에게 있어 강단은 전 생애의 언어적 표현이요 악의 세력에 대항한 전장이었으며, 결국 그를 유배와 죽음의 길로 끌고 간 피할 수 없는 숙명의 장소였다. (329) #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330] 수도사가 되기 전 안디옥에서 유명한 수사학자 리바니우스에게 사사했다. 어떤 사람이 누가 그의 뒤를 계승하겠냐고 물었을 때, “존이지,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이미 그를 차지했단 말이야”라고 대답했다고 함. (330) 안디옥의 감독 멜레티우스에게서 세례를 받고 수도생활 시작... 6년의 은둔 생활 후에 안디옥으로 돌아옴. (331) 397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직이 .. 2021. 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