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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실]577

“한국전쟁이 한국교회의 성격 결정에 미친 영향” - 노치준(1995) 노치준(광주대 교수ㆍ종교사회학) 『기독교사상 39(6)』, 1995.6, 10-18. I. 서론 한국전쟁은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실이다. (10) 전쟁의 체험은 이데올로기 교육을 통하여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면서 남북한 민족 사이의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10) II. 한국전쟁과 사회 구조 및 사회 심리의 변화 전쟁이 끝난 후 남북한 모두에서 냉전 체제에 가장 적합한 국가 체제가 형성되었다... 나함의 경우 해방 정국에 나타났던 좌파나 중도파는 완전히 몰락하고 우파가 국가 권력을 장악하였다. (11)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경험한 여러 가지 사건들과 새로이 형성된 구조적 조건은 기독교인을 포함한 한국인의 마음 속에 흑백 논리에 근거한 이분법적이고 경직된 사회 심리적 태도를 심어 주었다... 2021. 3. 2.
“한국전쟁과 한국 교회 구조의 변화” - 허명섭(2004) 허명섭 (서울신학대학교 성결교회역사연구소 전임연구원) 『한국기독교신학논총 35(1)』, 2004.10, 155-177. I. 들어가는 말 전쟁... 대부분 기존의 사회적 토대를 해체시키고 새로운 사회질서의 도래를 촉진하는 등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다. (155) 한국전쟁은 한국 사회의 전통적 질서와 문화체계의 해체를 가속화시켰으며 새로운 삶의 구조와 질을 추구하도록 작용했다. (155) 전쟁으로 인한 한국 교회의 외적 변화... (156) II. 각 교회의 지역적 구도의 변화 한국전쟁 이후 월남 피난민들에 의해 ‘북한식 기독교’라는 독특한 양식이 전국적으로 파급되었다. 해방 이후 월남 기독교인들은 서울ㆍ경기ㆍ강원지방 등 이묵에 인접한 지역을 중심으로 북한식 기독교를 재건하였다. (157) 1950년대 중반.. 2021. 3. 2.
“한국전쟁과 세계교회협의회, 1950~1953” - 김흥수(2001) 김흥수 (목원대 교수, 교회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14』(2001.2), 107-144. 1950년 한국전쟁 직후, 급박한 상황 속에서 1950년 7월 9일부터 캐나다 토론토에서 제3차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회가 열렸다... 원래 의안에 없던 한국전쟁 문제를 다루면서 “한국상황과 세계질서에 대한 성명”을 통해 한국전쟁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전쟁을 북한의 남침으로 규정하고, 유엔의 경찰 행동을 지지한 토론토 성명은 발표 직후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WCC 회원교회들 가운데서 격렬한 찬반논쟁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로 인한 논쟁은 1953년 7월 휴전 상태에 들어갈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107-108) I. 세계교회협의회의 한국전쟁 성명 1. 성명 작성 과정 1950년 6월 26일 국제선교협의.. 2021. 3. 2.
“한국전쟁과 기독교, 1950-1953” - 김흥수(2000) 김흥수 (목원대학교 신학과 교수) 『종교문화연구 (2)』, 2000.4, 29-49 한국전쟁은 자유 민주주의 이데올로기 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전쟁이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29) I. 전쟁 직전의 교회 상황 교회가 물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전쟁을 지원하게 된 것은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서였다. (30) 일제로부터의 해방 직후 새로운 국가건설의 전개과정 초기부터 남한과 북조선 두 지역 모두에서 교회 지도자들은 정치 활동에 깊이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북에서는 윤하영과 한경직 목사가 주도한 기독교사회민주당(1945)과 조만식 장로를 대표로 한 조선민주당(1945)이, 서울에서는 박용희 목사를 중심으로 한 사회민주당(1945)이 조직되었으며 서울이 기독교민주동맹(1947), 기독.. 2021. 3. 2.
“전남 선교의 선구자 배유지 목사” - 차종순 전남 선교의 선구자 배유지 목사 - 차종순 1892년 11월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의 7인의 선발대가 한국에 도착하기 시작한 이래로 1893년 1월에 7명이 모두 다 도착하였다. (16) 1893년 1월 28일 선교사 공의회가 결성되고, 충청도 남부지역과 제주도를 포함한 전라도를 남장로교 선교회에 할당하였으며, 이눌서 목사는 1893년 전주에 조사를 보내어 서문밖에 집 한 채를 사두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고, 전주의 양반 텃세가 심하고, 또한 외국인의 내지여행이 자유롭지 못하여 본격적인 선교를 자제하고 있었다... 1894년 3월에서 5월까지 남장로교 선교회의 결정에 따라 이눌서 목사, 유대모 의사, 그리고 한국인 어학선생 서(Saw) 선생과 함께 장거리여행... 선교부 설치 .. 2021. 3. 2.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Eugene Bell)의 선교와 신학” - 최영근 최영근(2014).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Eugene Bell)의 선교와 신학. 장신논단, 46(2), 137-163. I. 서론 미국 남장로교의 한국선교는 1892년 “7인의 개척자”의 내한으로부터 시작한다. (139) 유진 벨이 1925년 9월에 생을 마감할때까지 잠간씩 평양신학교에서 교수사역(1907~1923년)을 한 일을 제외하고는 광주지부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139) 유진 벨의 선교신학과 방법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네비우스 선교방법이었다. 이것은 북장로교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장로교 한국선교의 원리와 신조로 채택된 이후에 한국 장로교의 성립과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한 선교방법론이다... 평양에 마펫이 있었다면, 광주에는 유진 벨이 있었다는 평가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1.. 2021. 3. 1.
“초기 내한선교사들의 남도행전 (2) - 그들이 조선에 가야 하는 이유” - 전병호 전병호 (2014.05). [초기 내한선교사들의 남도행전] 그들이 조선에 가야 하는 이유. 기독교사상, 232-238.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선교사 1893년 1월 28일, 미국 북장로회 소속 선교사인 빈톤(C. C. Vinton)의 서울 집에 장로교 선교사들이 모여 “장로교 선교사 공의회”(The Council of Missions holding the Presbyterian Form of Government)를 조직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장로교 선교사들은 네비우스 선교 방법을 선교정책으로 공식 채택했습니다. (232) 네비우스는 1890년부터 중국 지푸에서 선교활동을 한 사람이었는데, 이때 서울에 와서 선교방법과 원칙에 대한 내한 선교사들에게 강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강의한 선교 방법 가운데는.. 2021. 3. 1.
“초기 내한선교사들의 남도행전 (1) - 군산에 디딘 복음의 첫 발자국” - 전병호 전병호 (2014.04). [초기 내한선교사들의 남도행전] 군산에 디딘 복음의 첫 발자국. 기독교사상, 244-248. 100여 년 전 미지의 나라 조선으로 달려와 피와 땀과 눈물로 복음의 씨를 뿌린 초대 선교사의 믿음과 헌신이 오늘의 한국교회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고 봅니다. (244) 탁류를 거슬러온 기쁜 소식 1937년 군산이 낳은 소설가 채만식이 「조선일보」에 ‘탁류’라는 소설을 연재했습니다... 채만식의 『탁류』에서 보여준 대로 호남 선교는 “예서부터 실마리기 풀린다”고 하겠습니다. 복음은 군산 옆구리를 훑으면서 바다로 흘러가는 금강의 탁류를 거슬러 군산에 흘러들어 왔습니다. (245-246) 1832년 7월 25일 귀츨라프 선교사가 군산을 지나 금강의 물을 타고 강경까지 이르며 복.. 2021. 3. 1.
“내한 선교사들은 정말로 오리엔탈리스트였나?” - 엘리자베스 쉐핑의 성육신적 인식론과 포스트오리엔탈리즘 - 한강희 한강희(2018). 내한 선교사들은 정말로 오리엔탈리스트였나?. 선교와 신학, 46, 46, 421-450. I. 들어가는 말 : 선교사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재조명의 필요성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의 출간은 탈식민주의 문학비평의 연구를 근현대 세계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과 접목시켜 기존의 비평의 영역을 확대시킴으로써 탈식민주의 이론으로의 획기적인 틀을 주조해 냈다. (423) 발레리 케네디(Valerie Kennedy)는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 담론이 과거 유럽의 제국주의 시기 서양의 타자에 대한 일방적인 재현과 제국적 수사학을 통해 물질적 지배는 물론이거니와 자신들의 정신적 존재의 정당성을 부여해 왔다는 연결성을 노골적으로 해체하는데 기여했음을 강조한다. .. 2021. 2. 28.